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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남 실 향 민 들 은 왜 속 초 로 모 여 들 었 을 까 ? 19 율적이었다. 다만 해변이 좁아서 LST선이 한 척밖에 정박할 수 없는 한계도 있었다. 이미 속초항은 일제강점기인 1932년부터 11년 동안 진행 된 1, 2차 수축공사를 통해 천혜의 대피항인 청초호까지 수로 와 항만이 조성되고 방파제가 구축된 상태였다. 일제 때 어업 전진기지와 병참지원항으로 활용되던 항구라서 한국전쟁 당시 에도 강원도 동해안에서 가장 양호한 조건을 갖춘 항만으로 손 꼽혔다. 미군은 일선부대 군사보급로 확보를 위해 속초에서 인 제 용대리까지 미시령도로를 개설했으며, LST선박의 안정적인 정박을 위해 바다에서 석호까지 이어지는 속초항 수로를 준설 하고 폭도 넓혔다. 1953년 2월~4월 미군 8206부대가 보고한 문서에는 속초지 역의 군수지원부대 목록이 나온다. 13개 부대에 장교(OFFI- CER) 51명, 사병(EM) 989명으로 주둔 미군이 모두 1,040명 이었다. 1953년 4월 한 달 간 속초항에는 화물선(cargo ships) 19척이 입항했고, 21척이 출항했다. 같은 기간 주문진항은 화 물선(cargo ships) 6척이 입항하고 6척이 출항했다. 속초항은 주문진항보다 3배 이상의 수송선이 입출항했다. 속초가 군수지원 거점지역이 되다 지금의 속초시청과 수복기념탑 사이 동명동 해안 일대는 군 수부대가 주둔하면서 LST선을 정박하고 군수물자를 하역했던 곳이다. 인근 청초호 수로에는 3층 건물 높이의 미군 식당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