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page


24page

■ 故 박찬우 1992년 충북대 총학생회장 학생회관 앞 누운 비석, 이팝나무의 주인공, 2차례 옥고, 생활고 속에서도 늘 웃음주던 낙천가 ‘세월이 가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동지는 떠나고 없지만 동지가 보여준 민주화의 열정은 우리의 가슴 속에 영원히 함께할 것이다’ 충북대 학생회관 앞 잔디밭에 박혀있는 작은 빗돌에 새겨진 희미한 비문의 내용이다. 비석의 주인공은 2000년 4월16일 ‘종격동종양’이라는 일종의 암으로 세상을 떠난 박찬우 전 충북대 총학생회장이다. 또 누워있는 이 비석 앞에는 어른 키만큼 자란 이팝나무 한 그루가 서있는데 박 전 회장을 추모하는 충북대 선후배들이 2000년 6월6일에 심은 이른바 ‘박찬우 나무’다. 그러나 흐릿하게 새긴 비문이 이미 희미해졌고 박 전 회장의 약력 등을 기록하지 않아 비석과 나무의 유래를 아는 재학생은 전무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박 전 회장은 충북대 농대 학생회장이던 1990년 가두집회 과정에서 구속돼 한 차례 구속된데 이어 1992년부터 충북대 총학생회장, 충북대협 의장 활동과 관련해 수배생활을 하다가 1993년 7월 또 다시 옥고를 치렀다. 박 전 회장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가장 먼저 검게 그을린 그의 얼굴과 잇속이 훤히 드러나도록 웃는 해맑은 웃음을 떠올린다. 그만큼 박 전 회장의 성격은 낙천적이었다. 제적상태에서 사회에 진출해 1999년 입학 11년만에 졸업장을 받기까지 박 전 회장이 가진 직업도 각양각색이었다. 중국집 주방장겸 명의사장에서부터 신문 및 우유배달, 보험영업에 이르기까지 궂은 일을 마다않으면서도 변변하게 결혼식조차 올리지 못한 아내 이정민(충북대 후배)씨와 단란한 가정을 이뤘던 것. 지역방송 편성프로그램에 박 전 회장이 보낸 사연이 소개되면서 웨딩사진 촬영권을 따낸 것은 지인들 사이에서 유명한 일화다. 박 전 회장이 1999년 8월 서울중앙병원에서 ‘종격동 종양’이라는 진단을 받고 투병생활에 들어가면서 “면사포도 씌워주지 못한 아내에게 병원비까지 떠안긴다”며 울었던 것도 그래서였다. 박 전 회장은 1998년 딸 희수가 태어나면서 1999년 가을에라도 지각 결혼식을 올릴 계획이었으나 암이 발병하면서 뒤로 미루다 이듬해 끝내 유명을 달리하고 말았다. 충북대 개신사랑민주동우회(회장 김형근 경영학과 78)는 박 전 회장이 세상을 떠난 2000년부터 박 전 회장의 유골이 안치된 목련공원에서 추모행사를 가져오고 있다. 추모행사는 해마다 기일을 앞둔 일요일에 열렸는데, 올해는 이와 함께 6월항쟁 20주년 행사와 궤를 같이해 추모사업을 벌이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박 전 회장의 대학선배인 배한용(무역학과 87)씨는 “찬우는 우리집 큰 애를 낳을 때도 병원에서 함께 대기했을만큼 선후배의 가정사까지도 자기 일처럼 챙겼던 후배”라며 “언제나 밝고 적극적이었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고 회상했다. 출처 : 충북인inNEWS 2007.3.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