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page

이옥순 (당시47세) 마석 모란공원 민족민주열사묘역에 안장 1954년 전북 정읍 출생 1973년 3월 원풍모방 입사 1982년 9월 해고. 집시법, 노동조합법 위반으로 구속된 후 83년 석방 1985년 8월 서울노동운동연합 부의장 선출 이후 의장직무대행으로 수배받음 1989년 여성 노동자 교육선교원 총무 1991년 장기수 출신인 권낙기 선생과 결혼. 1999년 통일을 여는 여성모임‘금강초롱’회장 70년대 민주노동운동 동지회 사무국장 2000년 5월 폐암 투병시작 6월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 대외협력위원장 10월 조선노동당 창건 55돌 기념식 경축 방북대표단으로 참석 2001년 2월 23일 운명 |188| 민족민주열사∙희생자자료집증보판 신자유주의시기 노동 동지의 삶과 죽음 전북 정읍에서 태어나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열아홉의 나이에 서울로 올라온 동 지는’70년대 여성노동운동의 중심이었던 원풍모방에서 운동의 삶을 시작했다. 끊임없는 열정과 노동자들에 대한 사랑으로 당시 정부에서 추진했던 기업별노 조 정책으로 어려웠던 일 등 고비마다 조합원들과 단결된 힘으로 원풍모방 노조 를 지켜왔던 동지는 투쟁 과정에서 여러 차례의 해고, 구속을 당하기도 하였다. 동지는 출소 후에도 여성 노동자들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였고 85년 서울노동운동연합 결성 후 부의장으로서 의장직무대행을 하면서 3년여동안 수 배생활을 하기도 하였다. 동지는 ’91년, 38세의 늦은 나이에 장기수 권낙기 선생 과 결혼하여 장기수 선생들의 든든한 벗이 되기도 했다. 무슨 일에건 열정을 다 해 자신이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던 동지는‘국가보안법 철폐를 위한 3008인 여성선언’을 위해 여러 동지들을 만나면서 뜻을 모아 ’99년 통일을 여는 여성모 임인‘금강초롱’을 묶어내고 통일운동을 시작하였으며, 70년대 민주노동운동동 지회 사무국장을 역임하며 ’70년대 노동운동가들의 힘을 모아 사회에 기여하고 자 했다. 이렇게 한 평생을 노동운동, 통일운동에 헌신했던 동지는 원풍모방에서 10년 간 일하면서 마신 먼지와 몸을 돌보지 않고 헌신적으로 일한 결과로 폐암을 선고 받게 되었다. 동지의 나이 마흔 일곱, 그러나 동지는 이에 굴하지 않고“이제 시작이다!”라며 정력적으로 전국연합 대외협력위원장 등 활동을 전개하다 ’01년 2월 23일 운명 하였다. 끝내살리라 |1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