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page

동지의 삶과 죽음 동지는 대학 졸업 후 건설노동자들의 생존권과 권익을 위해 한평생을 바쳤다. 동지는 ’97년 IMF사태로 극심한 실업의 고통에 처한 건설일용노동자들의 권리 와 생존권을 보장받기 위해서 경기도 광주지역에 건설일용노동조합의 깃발을 꽂 고 초대위원장을 역임하며 건설노동자들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 노력하였다. 또한 조합원들을 조직하기 위해 새벽 인력시장 등을 찾아다니며 설득과 조직화를 위해 동분서주하였고 조합원들과 함께 체불임금해결과 노동조건개선을 위해 다양한 사업을 전개하기도 하였다. 동지는 조합원들의 먹고살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노 력하던 중 마침내 산림청과의 협상에 성공하여 숲 가꾸기 사업에 노동조합의 참 여를보장받았다. 12월 25일, 모든 사람들이 성탄절로 들떠 있던 당일, 조합간부들과 숲 가꾸기 사업설명회를 준비하던 중 사무실에 원인불명의 화재가 발생하였다. 사무실에 있던 동지를 비롯한 간부들이 불을 발견하고 풍물 연습실로 들어서려는 순간 천 장이 무너져 내리면서 이들을 덮쳤고 다른 두 동지들은 중상을 입었으나 불행 중 다행으로 생명에 지장은 없었다. 병원에 입원 증 화기에 손상된 폐와 기관지가 부어 올라 호흡곤란과 무서운 고 통 속에서도 동지의 손을 끌어 부여잡고 힘겹게 손가락으로 한자한자 써내려가 며“함께 있었던 동지들의 안부와 나는 절대 죽지 않는다.”는 강인한 삶에 의지를 표명하였던 동지! 3일째 되던 날 마지막 죽음을 예상하였던 동지가 팔뚝에 써 내 려간 글씨는“…동지들을 믿습니다!”였다. 건설노동자들의 실업으로 인한 생존권적 위기를 누구보다 가슴 아파하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모든 것을 다 바쳤던 동지의 삶은 자신의 문제보다 먼저 어려운 동지와 노동자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옷 몇 가지와 몇 푼의 잔돈만을 유품으로 남길 만큼 자신의 소유에 무관심했던 헌신적인 삶 자체였다. 조현식 (당시33세) 마석 모란공원 민족민주열사묘역에 안장 1965년 서울 출생 1984년 한국외국어대 용인캠퍼스 입학 1990년 한국외국어대 학회연합 회장 1993년 경기도 광주 노동법률상담소 조직국장 1997년 경기도 광주‘일하는 사람들’회장 ‘한국노동운동협의회’운영위원 ‘민주주의민족통일하남광주연합’사무국장 1998년 경기도 광주지역 건설일용노동조합 초대위원장 민주주의민족통일경기동부연합 정책위원 1998년 12월 25일 경기도 광주지역 건설일용노동조합 사무실에서 화재 발생, 화상입음 28일 운명 끝내살리라 |171| |170| 민족민주열사∙희생자자료집증보판 신자유주의시기 노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