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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연숙(나이미상) 1994년 12월 4일 수원2지구 세입자 대책위 결성 1995년 6월 18일 철거반대 고공농성을 위한 골리앗 설치 1996년 9월 5일 한국토지공사의 강제철거에 맞서 사수투쟁 승리 1996년 2월 5일 한국토지공사 철거깡패와 공권력 동원하여 골리앗에 방화자행. 이 과정에서 불을 피하기 위해 신연숙 동지가 18미터 높이의 골리앗에서 뛰어내렸으나 운명 |142| 민족민주열사∙희생자자료집증보판 김영삼정권 사회 동지의 삶과 죽음 동지의 죽음은 한국토지공사의 반민중적인 정책에서 비롯된 것이다. 공익을 위한다는 한국토지공사는 정치인들의 자금줄과 투기꾼들의 앞잡이 노 릇을 도맡아 오며, 한해 수천억원의 개발이익금을 챙기는 허가받은 땅 투기꾼인 것이다. 그들은 주거환경의 개선이라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지만 개발대상지역에 거주하던 원거주 주민들이 사업완료 후 다시 재입주할 수 있는 가능성은 10%에도 못 미치고 있다는 현실이 그들의 허구적 논리를 단적으로 확인시켜 주고 있다. 이렇듯 정부의 투자기관인 한국토지공사가 공공이익이라는 명분을 앞세워 도 시서민들의 피와 땀을 착취하는데 혈안이 되고 사람을 죽이면서도 여전히 건재 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권력의 철저한 보호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정권과 한국토지공사의 반민중적 정책으로 인해 단 한 평의 삶의 보금자 리마저 빼앗길 위험에 처한 수원2지구 철거민들은 ’94년 12월 세입자대책위원회 를 결성하고, ’95년 골리앗을 설치하여 8월부터 150여일간 고공농성을 전개하며, 9월달 한국토지공사의 강제철거에 맞서 전국철거민연합회 동지들과 학생들의 연대투쟁으로 수지2지구 철거를 막아내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그들이 그것으로 포기할리 없었다. ’96년 2월 5일 백골단 200여명과 철거깡패 100여명이 골리앗에 기습적으로 진입하였다. 당시 골리앗 위에는 주민 4명과 학생 1명이 잠을 자고 있었는데 철 거깡패들과 백골단들은 폭력을 휘두르며 골리앗에 올라왔다. 그 과정에서 골리 앗에 불이 붙었다. 백골단과 철거깡패들은 18M높이의 철탑이 화염에 휩싸인 채 5층 꼭대기 위에서 살려달라는 동지들의 외침은 아랑곳하지 않고 불을 끄기는커 녕 포크레인과 쇠파이프, 해머 등으로 철거민들의 보금자리를 싹쓸이 철거를 자 행하였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동지의 투신은 두고 온 아이들을 위한 생존의 마지막 선택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동지와 수원2지구 철거민들의 요구는 무엇이었던가. 그들은 단지 법 으로도 보장되어 있는 순환식 개발에 근거하여, 가 이주단지 조성과 철거민들의 경제적 실정에 맞는 영구임대주택을 보장하라는 것이었다. 철거민들의 대다수 삶이 그렇듯이 동지도 세 아이와 남편이 함께 살 수 있는 작은 보금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고 살아왔다. 그러한 동지에게 돌아온 것은 죽음뿐이었던 것이다. 끝내살리라 |1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