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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인 (당시28세) 마석 모란공원 민족민주열사묘역에 안장 1967년 12월 전남 신안군 출생 1995년 6월 아암도에서 노점 시작 1995년 11월 25일 노점 철거에 반대 망루 농성 중 지부연대 위해 이동 1995년 11월 28일 오전 10시 철거 감시용 망루에서 농성중에 있던 이석근씨에 의해 의문의 죽음을 당한 채로 인천 앞 바다에서 발견 |140| 민족민주열사∙희생자자료집증보판 김영삼정권 사회 동지의 삶과 죽음 신체장애라는 힘겨운 신체 조건하에서도 노점생활로 기반을 꾸리고 자신의 삶 을 개척해나가려고 성실하게 살아가던 동지는 정권과 인천시 당국의 대책 없는 노점철거에 항거하여 투쟁하다 의문의 죽음을 당하였다. 동지는 ’95년 7월 인천시가 아암도에 군사보호시설 지구 철조망을 제거하자 이 지역에서 전국노점상연합회 동지들과 함께 장애인의 자립기반 마련을 목적으로 노점을 시작하였다. 인천시와 연수구는 아암도에 친수공간을 조성한다는 이유를 들어 용역회사를 고용, 경찰의 비호아래 1,500여명을 투입 생존을 위해 열심히 살아가던 수십명의 노점상들을 11월 24일 오전 7시 한겨울 추위에 내모는 철거 를 집행하였다. 노점상들은 철거를 막아낼 수 없다고 보고 10월경에 건설해 둔 망루에 올라가 고공농성을 전개하였다. 경찰은 소방차를 동원하여 물을 쏟아 붓 고 돌멩이를 던지면서 농성을 중지할 것을 요구하였다. 외부와 단절되어 음식물 의 반입이 차단 된 상태에서 살인적인 추위가 밀어 닥쳤지만 대책없는 노점상 해 산시도에 대해 하염없는 농성이 계속되었다. 11월 25일 저녁 동지는 고립 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 외부에 소식을 알리고 자 경찰의 포위망을 뚫고 외부로 탈출을 결심한다. 동지는 동료와 함께 저녁 8시 45분경 탈출을 시도 먼저 망루를 내려오다, 동료는 경찰이 자신들을 발견하고 망 루쪽으로 다가오고 있는 듯하여 동지에게 먼저 가라고 손짓한 후 다시 망루위로 올라갔다. 이것이 동지의 마지막 생전모습이었다. 망루를 떠난 지 3일 뒤 11월 28일 오전 10시경 동지는 농성장 근처의 아암도 앞바다에서 극도의 허기 그리고 추위와 싸우면서 근근이 버티던 동료들에 의해 발견되었다. 발견 당시 밧줄이 다소 풀어지기는 했으나 두손이 포박된 상태로 묶여져 있었 던 점, 얼굴 부위와 어깨 등의 좌상(피멍든 상처)이 존재했던 점, 야전조끼를 입고 있었는데 발견 시 벗겨진 상태였다는 사실 등 가족들과 지역 민주단체들은 의문 을 제기하며, 200일에 가까운 장례투쟁을 전개하였다. 이 과정에 경찰은 영장도 없이 시신을 탈취하여 국립과학수사연구소로 옮겨 부검을 하고 시신을 지키던 동지의 형은 연구소로 강제로 납치당해갔고 많은 부상과 연행당하기도 하였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조사결과 동지의 죽음은 위법한 공권력의 행사에 의해 죽음을 당한 것으로 결론지어졌다. 끝내살리라 |1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