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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의 삶과 죽음 동지는 우리에게 ’80년대를 대표하는 저항시인으로 널리 알려졌다. 동지는 고등학교 재학 당시부터 입시위주 교육에 반대하여 자퇴를 하고 대학 입학 후에도 3선개헌 반대운동과 교련반대운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 또한 ’72년 유신헌법이 선포되자 최초의 반유신 지하신문인「함성」을 제작∙배포하였 으며 다음해 2월에 다시 지하신문「고발」을 제작하고서 동료 15명과 함께 체포돼 8개월여의 투옥을 경험했다. 학교에서 제적된 동지는 고향 해남에 내려가 농사를 지으면서‘진혼가’, ‘잿더 미’등 시를 써 등단하였다. 이후 광주 최초의 사회과학서점‘카프카’를 열고, 다 시 귀향해 후일 한국기독교농민회의 모체가 된 해남농민회를 결성하기도 했다. 또한 황석영 등과 함께 민중문화연구소를 만들어 초대회장을 맡기도 하였다. ’79 년 남조선 민족해방전선(남민전)사건으로 투옥돼 9년 3개월 동안 옥고를 치르기 도 한 동지는 길지 않은 평생을 반외세ㆍ반독재 투쟁에 헌신하였다. 동지가 감옥 에서 우유곽이나 밑씻개용 휴지 등에 쓴 시들을 묶은 시집「진혼가」, 「나의 칼 나 의 피」, 「조국은 하나다」등은 그 누구의 시보다도 ’80년대 폭압적 현실의 한복판 을 날카롭게 꿰뚫는 절창으로 애송되었다. ’88년 12월 석방된 뒤 민족문학작가회의 상임이사 및 한국민족 예술인 총연합 이사 등을 맡아 민족문화운동에 힘을 쏟아왔다. 그러던 중 오랜 감옥생활과 석방 뒤의 과로 등이 겹쳐 얻은 췌장암으로 투병 끝에 운명하였다. 이제는그짐일랑우리에게내려놓고편안히가게 가로질러산을넘고물건너표표히먼저간친구 깨끗이환하게피면우리에게다시오게나 송홧가루온산천에펄펄날리면 눈속의샛붉은매화처럼다시오게나 해방동이그대의삶은이땅반세기의역사그자체 분단의철조망과제국의사슬이걷힐날반드시있으리 자본에의해자본이패퇴하는날반드시있으리 그때 다시 이 세상에 오게나 아픈 다리 바로 딛고 감은 눈 새로 뜨며 그잔잔한소년의미소로 벗이여남주여나의벗을넘어민주주의의참다운전사여 - 이시영의추모시중에서- 김남주 (당시48세) 광주 망월동 민족민주열사묘역에 안장 1946년 전남 해남 출생 1964년 광주일고 입학 후 자퇴 1969년 대입검정고시를 거쳐 전남대 문리대 영문과 입학 3선개헌 반대운동과 교련반대운동에 주도적 참여 1973년 반유신투쟁을 전개하다 투옥, 제적 1978년 ‘남조선 민족해방전선 준비위원회’가입 1979년 ‘남민전’조직원으로 활동 중 체포, 구속 1984년 첫시집‘진혼곡’출간 1988년 9년 3개월 만에 석방 1994년 2월 13일 새벽 췌장암으로 투병 중 운명 1994년 2월 16일 민족시인 고 김남주 선생 민주사회장으로 장례식 치룸 끝내살리라 |131| |130| 민족민주열사∙희생자자료집증보판 김영삼정권 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