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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의 삶과 죽음 동지의 삶과 죽음은 그 가족의 역사이기도 하다. 4.19 때부터 통일을 위해 일생 을 바쳐온 손병선 선생과 민주화, 노동운동 등에 헌신하고 있는 세 딸의 뒷바라 지로 한평생을 살아온 동지의 고난과 역경의 삶은 이 시대가 낳은 또 하나의 어 머니상이다. 손병선씨는 학생 시절인 4.19 때부터 오로지 통일을 위해 숨가쁘게 달려온 삶이 었고, 동지역시온갖어려움속에서도통일운동의대열에서벗어나보지않았다. 성장한 그들의 세 딸 역시“이제는 우리가 나설 때다. 두 분은 우리를 지켜만 봐 달라”며 각자의 역할을 찾았고 그들은 그래서 한 덩어리의‘통일가족’이 되었 다. 큰 딸 민옥은 교육현장에서, 둘째 민영은 민중당 등을 오가며 셋째 딸 민아는 노동현장에서 민주화와 통일을 위해 일해왔다. ’93년 손병선씨는 대남방송을 듣고 간첩 이선실과 회합했다는 혐의로 무기징 역을 선고받았고, 민영씨는 아버지를 도와 대남방송을 청취 기록했다는 이유로 7년형 선고, 그리고 동지 역시 남편을 도왔다는 이유로 수배령이 떨어졌다. 9개월여의 수배생활 끝에 사경의 몸으로 동지가 세브란스 응급실을 찾았을 때 는 이미 치료시기를 넘겼다. 남편이 연행되기 전날, 남편과 함께 당한 교통사고로 입원치료를 받지 않을 수 없는 의사뇌진탕을 입은 상태였다. 게다가 예전에 받은 췌장염 수술 후유증까지 남아 있었다. 이미 온몸은 심한 황달상태, 병명은 패혈증이 겹친 담도암이었다. “이런 모습으로 너희들 앞에 나타나서 미안하다” 가까스로 이어가는 그 한마디. 죽음이 눈앞까지 와 있는데도 질기게 버티다 그 끝에 이르러서야 응급실을 찾은 동지의 첫마디였다. 그런 몸을 한 동지가 근 열 달을 어디서 어떻게 보냈는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묻고 대답할 건강상태조차 되 지 못했기 때문이다. 감옥 안의 남편과 자식생각에 모질고 지독스럽게 버티고 견뎌냈을 것이라는 추측 외엔 별 도리가 없다. 성순희(당시55세) 마석 모란공원 민족민주열사묘역에 안장 1938년 9월 부산 영도 출생 1955년 부산여중, 남성여중, 새한중학교 졸업 1958년 부산 남여상 졸업 1959년 3월 1일 손병선씨와 결혼 1960년 4월혁명때 앞장선 남편이 5.16 쿠테타 이후 투옥되자 생선장사를 하며 남편 옥바라지를 함 1989년 10월 큰딸 민옥이 해직되자 전교조 교사가족회 서울지역회장, 전국 부회장 맡음 1992년 9월 26일 남편이 안기부에 연행후 기나긴 수배생활을 시작 1993년 7월 7일 연세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 1993년 8월 15일 운명 끝내살리라 |119| |118| 민족민주열사∙희생자자료집증보판 김영삼정권 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