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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의 삶과 죽음 동지는 일찍이 헌신적인 노동조합 활동을 통하여 자신의 변혁은 물론 주변 동 료들에게 노동자의 올바른 삶이 무엇인가를 실천적으로 보여준 진짜 노동자이다. 동지는 부도라는 절박한 상황을 맞이하여 회사 정상화와 고용안정 확보를 위 해 기꺼이 비대위 위원으로 나서는 헌신성을 발휘했다. 비록 2개월이라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동지는 그 누구보다도 열성적으로 활동을 했다. 규칙적인 식사를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황에서 낮에는 비상대책위원회 활동은 물론 실의와 절망에 빠진 주위 동료들을 격려하고, 밤에는 주변 동료들의 걱정에도 불구하고 엄습해 오는 겨울 추위와 싸우며 현장규찰임무를 가장 적극적으로 수행했다. 당연히 집 에는 일주일에 한 번 들어가기도 힘들었지만 짜증은 커녕, 오히려 주위 동료들을 격려하는 모습은 진짜 노동자의 표상이었다. 2월 20일 힘겨운 주간 활동을 마치고 야간 비상대책위원회 회의 도중 머리의 통증을 호소하면서 의식을 잃은 채 쓰러졌다. 이것이 동지의 마지막 모습이 되어 버렸다. 당시 동지는 곧바로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이미 뇌의 기능이 30%이상 정 지되고 있었으며, 뇌의 기능 정지 속도가 빨라지면서 채 하루를 넘기지 못하고 운명하였다. 동지는 한 많은 노동자의 설움을 딛고 일어서고자 했던 찬란한 노동해방의 꿈 을 살아있는 동료들의 과제로 남긴 채 끝내 유명을 달리한 것이다. 동지의 사인은 고인이 일반인보다 선천적으로 약한 뇌를 가지고 있는 상태에 서 과로가 겹쳐 발생한 뇌경색증으로 나타났고, 부인과 두 아들, 동료들이 오열 하는 가운데 동지의 시신은 화장되어 인천 앞바다에 뿌려졌다. 채희돈(당시30세) 화 장 1963년 2월 19일 충북 진천 출생 1989년~1990년 인천 남일금속 노동조합 대의원으로 활동 1991년~1992년 노조 교육부장으로 활동 1992년 12월~1993년 2월 20일 남일금속 회사 정상화를 위한 비상대책위원으로 활동 1993년 2월 20일 새벽 6시경 과로가 겹쳐 뇌경색으로 운명 끝내살리라 |11| |10| 민족민주열사∙희생자자료집증보판 김영삼정권 노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