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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의 삶과 죽음 동지는 평소“나는 조국과 연애하고 조국과 결혼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 는데 의협심이 강해 항상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사람으로 ’96년 일본의 독도 망언이후 민족의 자존심과 자주권을 지키고자 일본 대사관 항의 방문 시 홀연 대 사관 담을 넘어 한국 청년의 기개를 보여 주기도 했다. 또한 12월 경희대 김형찬 학우가 안기부 요원에 의해 불법연행 당해 경기도 대공 분실에서 분신하였을 때 이 사실을 알리기 위하여 대책위 농성단에서 15일 이상 활동을 하였고 날치기 노 동 악법, 안기부법 철회 투쟁에 항상 앞장서기도 하였다. 동지는 동아리 연합회 회장으로 밤낮없이 뛰어다녔고 ’97년 용인대가‘대학종 합평가’를 받게 됨에 따라 총학생회 학원자주화 추진위원회 산하‘대학종합평가 인정제소위’위원장으로 활동하며 학우들의 권익을 실현하기 위하여 학생회의 요구를 무시하는 학교당국과 치열한 싸움을 벌이기도 하였다. 그러던 중 2월 10 일 새벽 4시 30분경 이 땅을 살아가는 모든 이에게 시대의 아픔을 온 몸으로 호 소하기 위하여 분신을 기도했다. 동지는 병원 이송 중에도 동료 학우들에게“운 동을 열심히 해달라! 괜찮으니 너무 걱정마라!”를 계속적으로 외치며‘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기도 하였는데 이것은 뚜렷한 유서나 구호를 남기지는 않았으나 동지의 숭고한 조국사랑, 학원사랑, 민중사랑의 정신을 표현한 것이었다. 동지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문집「애국학생 한상근」을 ’99년 발간하였다. 추모 곡으로「승리의 눈물」(글 이은주, 곡 정용두)이 있다. 참된삶이란무엇인가? 라는질문에무척망설이다 대답도못했던시절이있었다. 그러나이제는대답을할수있다. 참된삶이란불의를보고도 그것을외면하고타협하는삶이아니다. 정의로운삶바로나의심장에 묻힌양심꺼내어불의를깨기위한삶이다. 또한실천이다. - 열사가남글글중에서일부「애국학생한상근」서문- 한상근 (당시26세) 마석 모란공원 민족민주열사묘역에 안장 1971년 전북 김제 출생 1991년 대한체육과학대 (현 용인대)격기학과 입학 1994년 복학, 농촌문제연구회‘흙사랑’활동 1995년 용인대 9대 동아리연합회 부회장 1996년 동아리‘흙사랑’회장, 총학생회 정책국장 일본의 독도망언 항의차 일본대사관 항의 방문중 일본 대사관 넘어감. 이에 불구속 처리됨 1997년 용인대 11대 동아리연합회 회장 김형찬 대책위에서 15일동안 농성단 활동 용인대 학자추‘대학종합평가인정제’소위원회 위원 1997년 2월 10일 새벽 4시 30분 분신 1997년 2월 13일 12시 15분 영등포 한강성심병원에서 운명 끝내살리라 |103| |102| 민족민주열사∙희생자자료집증보판 김영삼정권 학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