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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의 삶과 죽음 동지는 성신여대에 입학한 후 불교학생회 회장, 총학생회 활동을 하며 그 누구 못지않게 열정적인 활동을 해왔다. 활동을 하면서 서로 다른 의견으로 동지들이 힘들어할 때도 무엇보다 동지를 소중하게 여기고 그들에게 힘을 주며 살아가는 선배로서, 일꾼으로서, 동지로서 새롭게 거듭나기 위해 노력하였다. 나로부터의 결의, 결사라는 말을 온 몸으로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였고 동지들에게 따뜻한 사 람, 그러나 진짜 분노로 싸울 줄 아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였다. 동지가 총학생회 정책국장으로 활동하던 ’96년 성신여대 총학생회는‘예결산 안 공개’, ‘등록금 소위원회 재개’등을 요구하며, 학원자주화투쟁을 시작하였 다. 이에 학교 측이 학생들의 요구는 외면한 채 학생들에게 위협을 가하자 그 당 시 총학생회 정책국장이었던 동지는 총학생회장과 함께 학원자주화투쟁을 승리 로 이끌겠다는 각오로 학교 측이 즉각 협상에 나올 것을 요구하며, 무기한 단식 을 시작하였다. 단식은 3월 25일부터 4월 3일까지 10일간 진행되었다. 동지는 단식 도중 급격히 건강이 안 좋아진 상태에서 감기까지 걸려 가슴이 답 답하다는 등의 통증을 호소하였으며, 급기야 4월 7일 새벽 1시경 고대 안암병원 으로 옮겨 치료를 받았지만, 밤 11시 30분경 갑작스런 심근염으로 운명하였다. 단식으로 급격히 몸이 안 좋아진 상태에서 감기바이러스가 심근염을 일으킨 것 이었다. 그러나 동지의 죽음의 근본적인 이유는 김영삼 정권의 반교육적 행태와 이러 한 정부의 지침을 받아들여 학생들의 목숨을 건 단식에도 싸늘한 냉소와 시간 끌 기 작전으로 일관한 학교당국의 비교육적인 횡포에 의한 것이었다. 이후 성신여대 학생들은 동지의 뜻을 이어받아 지속적인 투쟁을 전개했고 마 침내 총장으로부터 동지의 죽음에 대한 공개사과를 받아냈으며, 학생들의 요구 는 대부분 관철되었다. 권희정 (당시23세) 마석 모란공원 민족민주열사묘역에 안장 1973년 5월 서울 출생 1992년 3월 성신여대 사범대 국민윤리교육과 입학 제 14대 대선공정선거 감시단 활동 1993년 불교학생회 회장, 시사토론 소모임‘물결’결성 1995년 사범대 학술부장 활동 1996년 2월 총학생회 정책국장 활동 1996년 4월 7일 ‘합리적 등록금 책정을 위한 재단과의 대화’를 요구하며 단식 및 총장실 점거 농성 중 과로와 단식 후유증으로 운명 끝내살리라 |89| |88| 민족민주열사∙희생자자료집증보판 김영삼정권 학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