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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의 삶과 죽음 동지는 강원도 태백 출생으로 ’86년 경남 양산에 소재하고 있는 방위산업체인 대우정밀(주)에 입사하여 병역특례 노동자로 열성적으로 일하였다. ’87년 7,8월 노동자 대투쟁이 있은 이후 대우정밀노동조합에 민주노조가 건설되면서 노동조 합 활동에 참가하게 되었고, 그러자 회사는 병역특례기간이 6개월이 채 안 남겨 져 있던 동지를 포함한 병역특례노동자들을 해고시켰다. ’91년 6월 18일 해고 후 병역특례 해고자들은 7월 15일 첫 상경투쟁이후 지속적인 투쟁을 전개하였다. 상경투쟁결과 방위산업체에서 민주노조 구심을 튼튼히 세우는 병역악법 개정투 쟁에 적극 나서게 하는 성과를 가져왔다. 병역특례 해고노동자들은 ’93년 7월 17 일 해고무효 확인소송에서 최종 패소하였다. 이후 동지와 병역특례 해고노동자 들은 기나긴 수배 생활을 시작하였다. 동지는 ’94년 2월 전해투 선전국장을 맡으면서 ’94년 4월 1일 병역특례 해고노 동자들을 중심으로‘병역특례 해고노동자의 수배해제와 원상회복을 위한 병역특 례 해고노동자 특별위원회’를 구성하였다. 병역특위 구성은 특례보충역제도의 불합리성을 제기하며 38일 동안의 단식농성 등을 벌였음에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향후 문제해결을 위해 여의도 민주당사에서 농성을 벌이며 투쟁을 시작하 였다. 병역특위는 사회 각계각층 인사들을 조직하여 병역특례 해고노동자들의 원상 회복과 원직복직을 촉구하는 서명 작업과 탄원서 발송을 하기로 하고 박형규 목 사, 송월주 스님, 이세중 변호사, 서경석 사무총장 등 500인 서명운동을 전개하 였다. 탄원서는 5월부터 6월 사이에 집중적으로 청와대, 국방부, 병무청으로 발 송하였으나 모든 탄원서가 병무청으로 이첩되었고 병무청은 행정조치 불가라는 입장을 회신하였다. 계속되는 투쟁에서도 이러한 문제들이 해결될 기미가 보이 지 않아 결국 자본과 정권에 대한 강력한 항거와 다른 한편으로는 민주노동 진영 의 단결과 투쟁을 호소하며 동지는 ’95년 12월 15일 목을 맴으로써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쳤다. 동지의 처절한 죽음과 호소에 대우정밀노동조합과 민주노동진영 노동자들은 열사의 뜻을 기리며 가열찬 총파업투쟁 등을 전개하였고, 마침내 대우정밀의 병 역특례해고노동자들의 병역문제와 해고자 복직투쟁은 승리하고야 말았다. 조수원(당시28세) 양산 솥발산 공원묘역에 안장 1967년 강원도 태백 출생 1986년 대우정밀공업에 병역특례로 입사 1991년 노동조합 활동과 관련 해고 1993년 마포 민주당사에서 38일간의 단식투쟁 1995년 12월 15일 민주당 서울시 지부에서 목을 매 자결 끝내살리라 |53| |52| 민족민주열사∙희생자자료집증보판 김영삼정권 노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