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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의 삶과 죽음 동지는“부모형제는 버려도 조합 활동과 동지들은 버리지 않겠다”는 말을 할 정도로 굳은 신념을 가지고 투쟁의지를 불태웠던 투사였다. 동지는 ’89년 6월 금성사 창원대로 투쟁에 참가하였다가 수배, 구속되었고 ’92 년 총액임금제 분쇄를 위한 굴뚝 투쟁을 벌이다 또다시 구속되었다. 2차 구속된 상태에서 동지는 재판 도중 수갑을 풀어주지 않는 채 재판을 진행하는 것에 항 의, 느슨하게 풀어진 수갑을 풀어 재판장에게 던져 법정모독죄로 3년의 실형을 추가 선고받고 청주 교도소에 수감되었다. 동지는 계속되는 고난의 실형 속에서 도 조합원들과 동지들에 대한 꿋꿋한 사랑을 잃지 않고 힘이 되었다. 그러나 장기간의 독방 수형생활로 인한 정신질환으로 ’94년 8월 진주 교도소 로 이감되었고, 그 해 9월 18일 독방에서 싸늘한 주검이 되어 동지들 곁으로 돌 아왔다. 교도소에서는 자살로 발표했으나 여러 가지 의문점을 남기고 있다. ‘ …언젠가부터우리에겐투쟁에대한두려움을가지게되고, 조직보존논리로그것을합리 화시켜내곤한것같군요. 그러나싸워야할시기임에도투쟁을피해나가려는잔꽤로무사안일 함속에보이는것은스스로무기력함이라할수밖에없을것이요. 이제자신감을되찾아야하 는시기가도래하고있소. 때는바야흐로새봄을기다리는시점에서우리들이해내야할일이 무엇인가는 눈앞에 있소. 새 봄에 새싹이 피어오르듯이 새롭게 태어나야 할 것이라 생각되는 구려. 다시태어나야할민주노조. 찬란한꽃봉우리를맺기위해뿌려져야할씨앗과같은큰힘 을발휘할것이라기대를해보구려…’ - 청주교도소에서1994.1.11 - 임종호(당시30세) 화 장 1964년 경남 합천군 삼가면 하판리 출생 1982년 동양기계 입사(현 통일) 1983년 창원기계공고 졸업 1987년~1988년 정당방위대 활동 1988년 노동조합 15년차 대의원 1989년 금성사 창원대로 가두투쟁으로 1차 구속 1991년 1년 6개월의 실형만기로 석방. 노동조합 18년차 대의원 1992년 총액임금제 분쇄를 위해 굴뚝농성을 벌이다 2차 구속, 쟁의조정법과 업무방해로 실형 10월, 재판도중 법정 모독죄로 3년 실형 선고 1994년 9월 18일 진주교도소에서 운명 끝내살리라 |43| |42| 민족민주열사∙희생자자료집증보판 김영삼정권 노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