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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의 삶과 죽음 동지는 ’32년 강원도 철원에서 태어나 ’71년부터 택시 회사에 입사하여 택시노 동자로서 살아갔고, ’80년에는 상호운수에 입사하여 노동조합 활동을 하였으며, ’86년 말부터 ’92년 말까지 노동조합의 선거관리위원장과 노동조합 고문 역할을 맡기도 하였다. 동지는‘택시운송수입금전액관리 법제화’, ‘사납금제의 철폐와 완전월급제 실시’등을 실현하기 위하여 적극적으로 활동하였다. 그러나 김영상 정권은 택시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조건과 이를 개선시키겠다 는 약속을 지키지 않고, ’93년 말‘택시운송수입금전액관리 법제화’가 보류되면 서 엄청난 실망과 좌절감을 느꼈다. 마지막 투쟁의 방법으로 자본과 정권에 항거 하여 ’94년 1월 24일‘김영삼 대통령에게 드리는 탄원서’라는 글을 남기고 자결 하였다. 동지의 자결 이후 노동자들의 강고한 투쟁으로‘택시운송수입금전액관리 법 제화’가 이루어졌으나 자본과 정권은 개악하여 시행시기를 3년내지 5년이후로 유보시키고 그해 10월 ’97년 9월 1일부터 시행키로 규정하였다. 현재 ’05년 현재 전액관리제가 시행되고 있으나 대부분의 택시업계는 도급과 다른 방식으로 장부 조작을 통하여 전액관리제의 참뜻을 왜곡하고 있는 현실이다. …불초 김성윤은 1971년 7월부로 택시기사로 입문하여 현재는 상호운수 기사로 만 14년째 근무하고있습니다. 근무기간에도단한번도무단결근한사실이없고, 금주금잡기로오직가 정에만성실하게지냈읍니다만이제는후회스러운일이었습니다. 역대의 정권이 바뀔 때마다 택시기사들의 생계보장을 약속하여 복지증진을 도모하기 위하 여 완전월급제를 시행하겠다고 약속도 받았습니다. 그러나 5, 6공을 통한 위정자들의 넉살좋 은식언으로끝났고, 우리택시기사들의오직하나뿐인희망을송두리채뽑아갔습니다. …오 전, 오후2부제운행으로1부운전사인오전반은정체된차량으로임금을받지못하는경우도 많습니다.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 일하면서 받은 보수는 기본급 302,090+승무수당 46,800+ 야간수당47,260=396,150, 일금396,150원을받고일을하고있습니다. 사납금은각회사마다 회사실정이어렵다고맨투맨공작으로규정에도없는입금을받고있으며, 입금격차는회사의 사정에따라2,300원씩더받고있는곳도있습니다. 그리고정체된교통란속에서헤메다가입 금이미달되면급료에서공제됩니다. …살기위해노력하는우리들의급료가고작삼십구만육 천백오십원이라면이는주거비도안되는돈입니다. 생활은무엇으로합니까? 자녀교육은무엇 으로시키며후생비는무엇으로충당합니까?…<하략> - ’94년동지가자결하면서남긴‘김영삼대통령에게보내는탄원서’중에서- 김성윤(당시62세) 벽 제 1932년 10월 강원도 철원군 출생 1971년 택시업계에 입사 1980년 7월 상호운수주식회사 입사 1986년 12월~1992년 12월 상호운수노동조합 선거관리위원장과 고문 1994년 1월 24일 오전 5시‘김영삼 대통령에게 드리는 탄원서’를 작성하고 자결 끝내살리라 |35| |34| 민족민주열사∙희생자자료집증보판 김영삼정권 노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