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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살리라 |325| 막농성 장소를 옮긴 것은 순진함에서 비롯된 실책이었다고 판단된다. 왜냐하면 장소를 옮 김으로 인해 천막농성이 장기간 지속된 하나의 요인이 되었기 때문이다. 애매한 장소인 국 민은행 앞으로 장소를 옮김으로 해서 정치권 전반에 대한 요구라는 상징성은 획득할 수 있 었지만, 여야 어느 정당도 집중적인 압박을 하지 못해 그들을 풀어주게 된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한나라당은 말할 것도 없고, 집권여당인 국민회의도 김대중 대통령이 이전부터 여 러 차례 법제정에 대해 언급 하였고, 농성 이후에도 언급하였음에도 이를 이행하려는 노력 을 해를 넘기면서까지 경주하지 않았다. 51) 한마디로‘령’이 서질 않은 것이다. 심지어 당직 자 중에서는‘대통령 발언은 정치적 발언일 뿐’이라며 일축하기도 하였다. 천막 농성 주체들은 농성 다음날인 11월 5일부터 심각한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 발단 은 국민회의 김원길 정책위의장을 만나고 나서부터였다. 법제정 요구에 대해“두 가지 법 모두 만들 수는 없다. 의문사진상규명특별법은 당연히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명예회복법의 경우 그 대상자가 너무 많고, 예산 확보에 어 려움이 많아 곤란하다”는 요지로 답변한 것이다. 이 얘기를 듣고 농성 대오는 술렁거릴 수 밖에 없었다. 이전까지는 두 가지 법을 만들기 위해 힘을 모아서 해 왔는데, 분열의 조짐이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이날 이후에도 국민회의 당직자들과 국회의원들은 제각각 이 같은 말을 하고는 하였다. 어떤 경우에는 명예회복법만 만들겠다는 말도 나오기도 하였다. 의문 사 유가족들의 경우 두 가지 법이 만들어져야 하는 데 하등 이의가 없었고 이를 위해 힘을 모아야 한다고 생각하였지만, 명예회복법에만 해당되는 유가족들 중에서는, 두 가지 법을 다 만들 수 있으면 좋겠지만 의문사법 때문에 명예회복법이 지장을 받고 있다는 생각에 52) 의문사 유가족들에게 포기할 것을 직∙간접적으로 종용하였다. 이 문제는 농성이 끝날 때 까지, 그리고 그 이후까지 심각한 문제로 남게 되었다. 유가족들의 천막농성투쟁을 담은 |324| 민족민주열사∙희생자자료집증보판 이렇게우리는5년, 10년, 20년, 30년의세월을지내왔다. 그세월의흐름속에서고통과슬픔을함께나누었던유가협회원들이하나, 둘세상을하직 할때마다, 우리는그억울함과분통한심정으로피울음을삼켜야만하였다. 이제 우리는 그 통한의 세월 동안 싸워 왔던‘명예회복, 진상 규명 특별법’제정을 정치권에 촉구하며, 마지막힘을모아국회앞에서농성에돌입한다. 겨울이오는길목에서백발이성성하고, 병들어몸한군데성한곳없는우리가이렇게길바 닥으로나앉는이유는, 살아있을날이얼마남지않았기에어떠한일이있어도올해안에이 를반드시이뤄내야하기때문이다. 우리는지난4월부터서울역광장에서, 광주, 대구, 부산, 제주에서대국민캠페인을진행해 왔다. 한여름의뙤약볕을고스란히받으며, 집중호우를피할생각도하지않고목이쉬도록 명예회복과진상규명을외쳐대었다. 10만이넘는국민들이이에호응하여서명하였고, 대통령도법제정을지시하였다. 이제정치권이화답할차례다. 여와야를막론하고당리당략을떠나법제정에앞장서기를강력히촉구한다. 명예회복, 진상규명 특별법 제정은 회피할 수 없는 시대의 요구이며, 어떠한 이유로도 이를 거부하는것은역사앞에두번죄인이되는것에다름아니다. 우리는법제정이될때까지국회앞농성을중단하지않을것을결의하며, 다시는우리와같은부모들이이땅에생겨나지않게되기를간절히소망한다. 1998년11월4일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회원일동 이 때까지만 해도 천막농성이 4백22일간이나 계속되리라고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하였 다. 첫날에는 집권여당 앞인 새정치국민회의 당사 앞에다 천막을 쳤다. 그런데 국민회의 인권위원장의 부탁 50) 으로 다음 날 국민은행 앞으로 천막을 옮기게 되었다. 그러나 당시 천 50) 집권여당인 자기들은 적극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 하는데 당사 앞에서 천막농성을 하면 곤란하니까 장소를 마련해 줄테니 옮 겨 달라. 51) 이는 공동여당이라는 한계도 있었겠지만, 오랜 기간동안 야당으로 있다가 집권여당이 되었기 때문에 야당적 당 운영 관성이 강하 게 남아 있었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특히 제15대 국회가 1996년 5월 개원하였고 15대 대통령이 1998년부터 임기 시작을 하여, 농성을 시작한 11월까지 집권여당이라는 변화된 상황으로의 당 체제 정비가 안되었다고 판단된다. 52) 제로섬게임으로 인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