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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살리라 |309| 또 다른 의문사 유가족 김을선 7) 님은 한 탄원서 8) 에서 그 심정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이사건은진정인들의다방면에걸친눈물겨운노력으로청와대를비롯한행정, 사법당국에이르 기까지진정서제출만도20여차례, …진정인은검찰의철저한진상규명을요구하며10년이넘게자 식의유골을땅에묻지못하고각계에호소하며진실을밝히기위해백방으로뛰어다녔습니다. 자식 의 죽음을 밝히려는 진정인 김을선은 백방으로 뛰어 다니다가 감옥에 갇혀 수인이 되기도 하였으며 경찰철창신세를밥먹듯하는운명으로바뀌어갔습니다. 진정인의진실을알리려는피눈물나는노 력은멈춤없이계속되었습니다. 바라옵건대, 명백한진실이밝혀져죽임을당한자식의영혼이라도달래주고유골이라도고이묻 어주며다시는이땅에우리가족들과같이고통받는이들이없기를간절히바라며사건의재조사명 령만이라도내려, 다시사건을재수사가되도록선처해주시길간절하게빕니다.” 개별사건 진상규명 노력은 차치하고라도, 1988년 10월 17일 9) 의문사 유가족협의회를 발족함과 동시에 기독교회관에서 진상규명을 위한 집단적인 투쟁 10) 을 시작한지 정확히 12 년 만인 2000년 10월 17일, 의문사진상규명에관한특별법 11) 에 의하여 대통령 소속으로 의 문사진상규명위원회 12) 가 공식 출범하였다. 위원회가 출범할 수 있게 하기까지 과정을 살 펴보면 다음과 같다. 13) |308| 민족민주열사∙희생자자료집증보판 “아들을잃고난뒤로는모든일을할수가없고, 한다하더라도제대로할수가없었다. 세상이모 두저주스럽고한스러우며이웃보기가부끄러웠다. 어린아들딸들을볼때도무능한아버지라고원 망하는것같기도 했다. 갑작스레형과오빠를 잃은어린 아들딸들의 얼굴에 항상슬픈 표정이 배인 것을볼때는, 무어라할말을잃고세월을보내게되었다. 돈이만들어지면주머니에넣고그냥전국 을돌며혹시나하는바램에서당시사병들을찾아봤으나모두가허사였다. 그냥소득없이집을찾 아오는발걸음은너무나무거웠다. 못먹는술한잔마시고잠을자다깨어보면옆에서소리없이흐 느끼는집사람을볼때는할말이없었다. 못먹는술을억지로먹다보니위장병이생겨났고집사람은 뼈에가죽을두른허수아비가되어갔다. 서로마주앉아도할말이없고집안에웃음을잃고사는세 월은너무나비참했다. 살아 있을 때 잘해줄걸 하는 마음도 들었지만 이미 지난 일이고, 나머지 애들에게 잘해주고 싶은 마음은있었으나그표현을할수도없었다. 원근이가대학시절에부산에서떨어져살면서도동생에 게운동화한켤레를사서보내주었는데, 제형이죽은뒤에그신을빨때마다흐느껴울고그신이 다달도록버리지 않는모습을본하숙집아주머니의 말을 지금도 잊지못한다. 가족이 무엇이기에, 정이 무엇이기에 지금까지도 가슴 깊은 곳에서 뭉클 하는 무엇이 솟아나오면 눈물이 흐르는지를 알 수없다. 세월이가면잊을수있을거라고그누군가말을했다지만, 상급자에게억울하게죽임을당 하고도자살이라고하는누명을씌워지는이비참함을이세상누가알수있겠는가. 당해보지않은 사람은아무도 느끼지못할일이다. 통곡을 해도소용이 없고 소리쳐 봐도소용이없겠지만, 아들의 시신 앞에서 하였던‘반드시 자살이라는 누명만은 벗겨주겠다’는 약속을 잊지 못하고 살아온 18년 세월이원망스럽기도하다. 그약속때문에나는1998년까지아들이유해가안치되어있던춘천공동 묘지에한번도찾아가지 않았었다. 그곳으로 찾아가면아들의 유골을 가져올수밖에 없고, 가져오 면묻고잊어버리면서편히살것같아서였다. 사랑이무엇이기에약속이무엇이기에그것을지키려 고이렇게비참한세상을살아왔던가. 왜눈물은마르지를않는지. 남자가왜울어하고입술을깨물 어 보지만 눈물은 막을 수가 없다.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딸들에게 정말 미안하다는 말을 해야겠다. 그동안아들과의약속때문에,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제대로하지도못하고마음과는달리따듯한 표현한번하지못한것에대해정말미안하다는말을전하고싶다.” 6) 6) 허영춘, 인물과 사상, 2002. 12 게재 글 7) 창원 대우중공업 노동자로 의문사한 정경식의 어머니, 의문사 진상규명이 안되면 일가족이 음독하겠다며 지금도 비상을 가지고 다 닌다고 함. 8) 1996년 1월 20일 국민고충처리위회 위원장에게 보내진 탄원서, 박원순, 한국의 정치적 의문사, 민족민주열사∙희생자∙의문사 명 예회복을 위한 1997년 제2차 학술회의 자료집, 1997, 30쪽 9) 10월 17일은 의도하지는 않았지만“의문사”와 상당한 인연이 있는 날이다. 1969년 10월 17일 삼선개헌 확정일, 1972년 10월 17일 유신체제 선포일. 10) NCC인권위 사무실에서 이날부터 1989년 2월 27일까지 135일간 농성을 함. 11) 이하“의문사법”으로 표기함. 12) 이하“위원회”로 표기함. 13) 이 글에 지난한 투쟁 과정을 다 담을 수는 없으므로 중요한 사항을 흐름에 따라 기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