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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수 (당시34세) 마석 모란공원 민족민주열사묘역에 안장 1968년 제주 출생 1989년 서울장애인종합복지관 전산과 졸업 1989년~1991년 서울장애인종합복지관‘싹틈’동문회 연대사업부장 1991년 장애인운동청년연합 조직부장 1993년~1998년 전국장애인한가족협회 조직국장 1995년 3월 최정환 열사 투쟁집행위원 5월 장애인자립생활추진위원회 조직부장 9월 인천아암도 생존권 투쟁 중 구속 12월 이덕인열사 투쟁집행위원 2001년 서울장애인연맹 조직국장 2001년 피노키오자립생활센터 사무국장 2002년 서울장애인연맹 사무처장 2002년 3월 3일 ‘제1기 장애인 청년학교’수료식 도중 과로로 사망 |268| 민족민주열사∙희생자자료집증보판 신자유주의시기 사회 동지의 삶과 죽음 동지의 생애는 장애인의 권리와 인간다운 삶을 위하여 당당히 투쟁한 투사의 삶이었다. 동지의 투쟁은 서울장애인종합복지관을 다니던 시절부터 시작이 되었다. 복지 관에서는 장애인들이 정신력과 체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만으로 점심시간에 훈련 생들에게 국민체조하기를 강요했는데 동지는 이를 거부하는 투쟁을 조직하여 국 민체조시간을 없애버렸다. 또한‘싹틈동문회’에서 발행한 소식지를 복지관측에서 압수한 사건이 발생했 다. 이 소식지에는‘복지관을 졸업한 학생들의 90%이상이 실업자로 살아가고 있 고 , 그나마 취업한 사람들의 대부분이 6개월 이상 실습이라는 명목으로 5만원 이 하의 교통비도 되지 않는 돈을 받으며 노동착취를 당하고 있다’는 내용이 실려있 었는데 복지관은 서울시에 수료생들의 취업률을 90%가 넘는다고 보고하고 있었 던 것이다. 동지는 이 사실을 밝히는 농성투쟁에도 결연히 참여하였다. 동지는 대학을 준비하던 중에도 불의에 항거하기 위해 정립회관 시설비리 투 쟁에 참여하였고, 배우지 못하고 가진 것 없는 장애인들이 먹고살기 위해 노점상 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상황에서 발생한 최정환 열사의 분신과 이덕인 열사의 의 문사 투쟁에 헌신했다. 이외에도 장애인운동청년연합회, 전국장애인한가족연합회, 서울DPI활동, 그 리고 청계천8가에서의 노점자리 확보를 위한 장애인자립추진위원회, 노들장애 인야학, 청년학교 등 수많은 사업을 조직했고 장애인노동권확보를 위한 걷기대 회를 매년 전국적으로 조직하는 투쟁을 전개했다. 동지는 장애인의 문제가 단순히 장애인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한 집단이기주의 나 조직이기주의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자본의 세상에서 장애인이 소수자로서 차별받는 근본적인 문제제기와 세상을 바꾸는 투쟁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또한 장애인들이 시혜와 동정의 껍데기에 안주할 것이 아니라, 자본의 세상을 향하여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당당하고 비타협적인 투쟁을 전개해야한다는 것을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끝내살리라 |2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