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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원 (당시36세) 진주시 나동 공원묘지에 안장 1965년 6월 22일 출생 1984년 경상대학교 사범대학 입학 1990년 경상대학교 총학생회장 권한대행 역임 1991년 7월 구속 1993년 우루과이라운드 투쟁 당시 사천군 농민회 실무자로 일함 1994년 사천군 농민회 사무차장 1995년~1996년 사천군 농민회 사무국장 1997년~2000년 전농 경남도연맹 정책실장 2001년 4월 23일 운명 |264| 민족민주열사∙희생자자료집증보판 신자유주의시기 사회 동지의 삶과 죽음 식민지 조국의 아들로 태어났기에 반미 자주와 조국통일 투쟁의 이름 없는 전사가 되어 이 청춘바치겠노라동지는언제나말했습니다. 고통받는농민의아들로서농민해방참세상건설 에한목숨바치겠노라동지는언제나다짐하곤했습니다. 전사의맹세를지켰기에동지는독 재정권의감옥에갇혔고, 또한농민활동가로서마지막쓰러지는순간까지회의와투쟁에치 열했었습니다. 세상에 이런 사람이 어디에 있을까요. 자신의 미래보다는 조국의 운명을 걱정 한사람, 자신의안락보다는민족의통일을더염원한사람, 돈과권력보다는아무도알아주지 않는농민활동가로서의고난의길을선택한사람, 그는그런사람이었습니다. 여기우리의친구이자동지인그가누웠습니다. ’80년대전두환정권의광폭한탄압속에서 동지는학생운동의씨앗을뿌리고가꾸었으며, ’90년회장도부회장도끌려가버린노태우정권 의치하에서동지는권한대행으로서끝까지전선을지켜냈습니다. 농민활동가로서의삶을선택한동지는도연맹정책실장이라는중임을맡아가진모든힘과 열정을쏟아부었습니다. 병든몸를이끌고참가한작년동지의마지막상경투쟁에서먹지못 해초췌한모습으로버스뒤쪽에서구토를하면서도괜찮다며웃던동지의모습이떠오릅니다. 급한연락을받고달려간병원에서담담히우리를맞이하곤긴박한정세에쉬고있어미안하다 며가열찬투쟁을부탁하던동지의모습이떠오릅니다. 김성원동지! 그대는이땅의아들이었고진정한전사였습니다. 마지막만난자리에서동지는말했지요. “삶은길고짧음의차이만있어먼저갈뿐”이라고. 남겨진이들은허망하고안타까워이렇게눈물흘리지만소리내어울지는않으렵니다.이땅의 농민들이노동자들이민중들이죽음의문턱에서죽어가고있기때문입니다. 남은자들은슬퍼 할겨를도없이투쟁의현장으로달려가야겠지요. 그것이동지가진정으로원하는바이라고여 깁니다. 김성원동지! 정말치열하게살아온세월이었습니다. 동지가못다이룬그몸든것여기살아있는자들에게모두맡기고편히쉬소서. 구룡이, 순복이가 기다리는 그 세상에서 다가올 민족해방, 통일조국, 농민해방의 참세상을 지켜보소서. 동지여! 편히쉬소서! - 조사‘김성원동지를가슴에묻으며’중에서- 끝내살리라 |2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