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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일수 (당시50세) 양산 솔밭산 공원묘역에 안장 1954년 9월 3일 경주 출생 1963년 울산상업고등학교 중퇴 1996년 2월 현대중전기 선일기업 근무 2001년 6월 현대미포조선 사내하청 건일산업 근무 2001년 12월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현우기업 근무 2002년 3월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인터기업 입사 사내하청협의회(모임)인‘한마음회’에서 활동. 2003년 7월 22일 현대중공업 전 공장에 선전물 배포. 연월차, 퇴직금 등 체불임금 지급과 근로조건 개선 문제로 업체에서 동료들과 투쟁을 전개함 2003년12월 원청은 동지의 모든 전산자료를 말소시키고 강제 해고를 함 2004년 2월 14일 “비정규직 차별철폐”유서 남기고 분신 운명 |238| 민족민주열사∙희생자자료집증보판 신자유주의시기 노동 동지의 삶과 죽음 신자유주의 정책 이후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단지 비정규직이라는 이 유만으로 온갖 차별과 멸시를 받아왔다. 똑같은 일을 함에도 임금은 정규직의 절반도 안되고 노조활동 제약은 물론이고 모든 사내복지에서 비정규직은 제외되었다. 4대보 험이 적용되지 않았으며, 연장근무와 휴일근무 시 적용되어야 할 50% 가산금도, 연 월차와 주차도 받지 못하면서, 언제든지 회사가 원한다면 퇴직금조차 없이 해고당해 야 했다. ’03년 8월에는 노동조합을 결성하고자 했으나 사내하청 노동자들에게 돌아온 것 은‘업체폐업’을 통한 고용불안, 노동자간 갈등 유도 등 온갖 탄압과 해고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동지는‘한마음’이라는사내하청협의회에서활동을하며, 하청노동 자들을 조직하고 동료직원들의 임금착취 부분인 연월차, 퇴직금 등의 임금체불 건을 맡 아서진정서를제출하는등의활동을해왔다. 그러던 중 ’03년 8월쯤 이를 알게 된 원청이 탄압을 가해왔고, 원청이 인터기업 사 장에게 동지를 해고할 것을 종용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동지는 나머지 하청노동자들의 임금체불과 관련해서 진정서를 일괄 보내겠 다고 하자, 인터기업 사장 박진용은 타협안으로‘임금체불액은 지불능력이 없어 시 간을 줄 것을 요청하고, 원청에서 해고 압력이 들어오는 것에 대해 일단 휴직처리를 하고 이후 다시 일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는 내용의 각서를 체결하고 이를 비밀에 부 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동지는 탄압 사실과 각서의 내용을 공개하는 유인물을 현 장에 배포했다. 또한 강제휴직기간 중에도 인터기업이랑 임금체불과 휴직철회 등을 내용으로 한 노사협의회를 진행하고 임금체불 해결을 위한 하청노동자서명을 조직, 현대중공업의 원.하청 활동가들을 만나 연대를 호소하고 투쟁을 조직하는 등 동지의 활동은 활발히 진행되었다. 이는 현대중공업 사내하청노동조합이 결성된 바로 직후 의 일이었다. 그러나 ’03년 12월, 원청은 해고통지서도 보내지 않은 상태에서 동지의 모든 전산 자료를 말소시키고 강제 해고를 시켰다. 현장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이 사라진 동지는“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로 산다는 것은 인간임을 포기해야 하는 것이며, 현대 판 노예로 살아가야 하는 것이며, 기득권 가진 놈들의 배를 불려주기 위해 재물로 살 아야 하는 것이다. 차별과 멸시, 박탈감, 착취에서 오는 분노!”라고 외치며 2월 14일 산화해 갔던 것이다. 끝내살리라 |2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