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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기득 (당시42세) 양산 솔밭산 공원묘역에 안장 1961년 출생 1980년 인제대 의대 입학 1981년 병영 집체 훈련 거부 중 미등록 제적 1986년 3월 전남 국립순천대학교 사범대 국어교육과 수석입학 1988년 5월 국어교육과‘참교육 쟁취 및 무능교수퇴진을 위한 자주 민주 통일 교육 실천대회’ 투쟁위원장으로 9월말까지 113일간의 장기간 파업 농성 1988년 11월 순천대‘교육학부 쟁취 및 발령 적체 해소’를 위한 투쟁에 참여 1989년 순천대학교 총학생회 부회장 역임‘전교조 결성 운동’‘5월 광주 민주화운동 계승 투쟁’‘이철규 학생 고문 살인 진상규명 투쟁’에 참여 1989년 6월 전대협 산하 남대협 통일선봉대장으로 통일운동 전개 1989년 8월 총학생회 부회장 역임. ‘집시법 위반, 폭력행위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을 사유로 1년 6개월의 실형을 받고 공주교도소 등지에서 옥중 투쟁을 벌임 1991년 3월 국어교육과에 복학, 사범대 동아리‘비봉문학회’조직 1992년 2월 순천대학교 국어교육과 졸업 2001년 9월 ‘전국 시국사건 관련 미임용자 채용 특별법’에 의해 개금여중 교사로 발령 2003년12월 7일 사고로 입원 중 운명 |234| 민족민주열사∙희생자자료집증보판 신자유주의시기 노동 동지의 삶과 죽음 ’01년 9월 마흔 한살의 늦은 나이에 국어 교사가 된 동지는 ’03년 12월 처음이 자 마지막 학교가 된 부산시 진구 개금여중을 뒤로 하고 양산 솥발산 공원 묘지 에 묻혔다. 사건의 발단은 ’02년 11월 20일 동지가 한 학생의 성적처리 문제로 교육청에 질의를 하면서 시작되었다. 3학년 학생이 학교의 성적관리규정을 무시한 잘못된 전례에 따라 성적을 부여받음으로써 불이익을 받게 되자 이를 안타깝게 여긴 동 지가 주위 여러 학교와 교육청에 질의하여 학교성적관리규정에 따라 성적을 처 리하도록, 잘못된 관례를 바로잡는 데 적극적인 노력을 하였다. 하지만 교육청 장학사는 학교에 곧바로 전화를 걸어 이 사실을 알렸고 교감은“네가 교감이냐, 교장이냐, 교육청에 왜 전화를 걸어”라는 심한 비난을 했다. 2학년 부장교사는 동지의 멱살을 잡고 사표를 쓰라는 등 협박까지 했다. 동지는 20일 이후 일주일 동안 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사고가 있던 11월 28일, 교감이 화해자리를 마련한다는 회식 자리에조차 2학 년 부장교사가 동지에게“눈깔을 확 찔러 버린다”“죽여버린다”는 거친 말을 계 속 했고, 결국 격렬한 몸싸움까지 벌어졌다. 동지는 자리가 파할 무렵부터 구토 증세를 보이며 몸 상태가 현저히 악화된 상태로 동료 교사의 도움으로 집에 돌아 갔으나, 바로 병원으로 이송되어 입원 중‘저산소증으로 인한 뇌손상, 뇌 탈출증, 심 정지’로 사망했다. 동지의 죽음은 교육청과 학교 관료들의 비민주적인 행태로 인한 것이었으며 이런 비민주적 교육행정은 또한 전교조에 대한 현장통제요, 억압이었다. 대학에 입학 후 조국의 자주 민주 통일을 위해 청춘을 아낌없이 바치고 교단에 선 뒤에는 이 땅의 참교육을 위해 헌신했던 동지. 동지는 진정한 스승이었다. 끝내살리라 |2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