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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복남 (당시43세) 양산 솔밭산 공원묘역에 안장 1960년 5월 8일 부산 출생 1998년 전국차주연합회 활동 2002년 6월 민주노총 전국운송하역노조 가입 2002년10월 전국운송하역노조 화물연대 부산지부 김해지회장 2003년 5월 7일 파업동참선전전 중 교통사고로 운명 |218| 민족민주열사∙희생자자료집증보판 신자유주의시기 노동 동지의 삶과 죽음 동지는 ’03년 5월 7일 서김해인터체인지에서 파업동참 선전전을 하다가 불의 의 교통사고로 운명을 달리했다. 동지는 5월 10일 전국화물노동자장으로 솔밭산 에 안치됐다. 화물연대는 ’02년 10월 특수고용직 화물운송노동자들이 모여 출범을 했다. 특 수 고용직 화물운송노동자들의 생존권은 벼랑 끝에 내몰린 상황이었다. 화물운 송노동자들은 전근대적인 다단계알선으로 운임의 절반 이상을 화주와 운송알선 업체에 빼앗겼다. 일주일에 사나흘씩 밖에서 자면서 장시간노동에 시달려도 화 물운송노동자들에게 돌아가는 것은 과로와 낮은 수입, 부채와 죽음의 그림자 뿐 이었다. 화물연대는 출범 다음해인 ’03년 5월 2일 포항지부의 파업을 시작으로 각 지부 별로 파업에 돌입했다. 화물연대 조합원들이 파업에 돌입하자 물류가 마비됐다. 정부와 자본은 화물연대 파업의 위력에 놀랐지만 속수무책이었고, 전근대적인 물류체계가 전 국민적인 관심사가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03년 5월 7일 파업 지원과 동참을 호소하며 선전전을 전개하던 동지가 불의의 교통사고로 사망했 다. 화물연대 부산지부는 대정부 10요구안 쟁취를 내결로 사실상 전면파업투쟁 을 전개했다. 화물연대는 대정부교섭을 통해 많은 요구안을 쟁취하고 5월 15일 1차 파업을 끝냈다. 화물연대는 1차 파업 3개월 후에 노무현 정부가 노정합의내용을 지키지 않아 2차 파업에 돌입했다. 노무현 정부는 언론에 돈을 뿌려가며 복귀율을 조작 하고, 대화와 교섭을 일방적으로 거부하고 강경탄압으로 치닫았다. 화물연대 2 차 파업은 정부의 노동탄압으로 결국 쓰린 패배를 경험했다. 많은 노조간부들이 구속되었지만, 화물연대 조직은 굳건히 살아있다. 끝내살리라 |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