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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판 1907년 8월, 일제에 의한 한국군대(강화진위대) 강제해산으로 강화의병이 일어나자 일본군은 주모자로 장두교회(현 강화중앙교회) 교인 김동수 권사, 동생 영구외 그의 4촌 김남수 권사를 추모자로 몰아 체포하였다. 그 이유는 김동수 권사가 기독교 독립운동가인 이동휘등과 항일민족운동에 앞장섰다는 것과 교회에서 강론할때 민족의 독립의식을 고취시키는 연설을 하였으며, 태서신사라는 서양 역사책을 읽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일본군이 김동수 권사 3형제를 재판을 위해 포승줄로 꽁꽁 묶은 채 서울로 압송하던 도중 더러미 해변에서 일본칼로 즉결처형하는 어이없는 일이 일어났다. 뚜련산 죄도 없이 재판을 받을 경우 일본군의 무고가 밝혀질것이 뻔하기 때문일 것이리라. 이 순국사건은 그리스도의 믿음을 지키다가 희생당한 피의 세례였으며, 민족수산의 십자가를 진 교회의 모습을 대변하는 것이었다. 이에 본 교회는 교회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선조의 숭고한 뜻을 기념하기위해 순국96주년을 맞아 전 교인의 뜻을 모아 이 비를 세운다. 주후 2003년 8월 31 기독교 대한감리회 강화중앙교회 담임목사 이민구 김동수권사 삼형제 추모비건립추진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