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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5 기쁨을 주는 자식이 아닌가? 내가 그를 자주 책 망해 말하지만, 아직도 그를 기억한다. 그러므로 내 창자가 그로 인해 고통을 받으니 내가 분명 그 를 긍휼히 여길 것이다. 여호와의 말이다”(예레미 야 31:20) 「하나님의 아픔의 신학」을 저술한 기타모리 가조 는, 타락한 인류에 대한 긍휼과 심판 사이에서 고 통하시는 하나님의 선택이 예수였으며, 그 하나 님의 고통으로 인해 예수의 십자가가 역사적 필연 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소돔과 고모라에 대해서 도 동일한 마음을 갖지 않으셨을까요? 그리고 더 나아가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당신의 그런 마음을 더 깊이 알기를 원하지 않으셨을까요? 아들을 죽여야 하는 고통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 는 고통의 범위를 넘어서는 것이며, 보통의 경험 속에서는 체험될 수 없는 인식의 범주에 있는 것 입니다. 모리아 산까지 3일 길을 걸으며, 결국 제 단 위에 그 아들을 눕히고 칼끝을 겨누기까지의 과정을 통해, 아브라함은 아들의 죽음에 버금가 는 처절한 고뇌와 고통의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그러나 만약 그 고통이 주님으로 말미암아 의도 된 것이었다면, 그 고통은, 타락한 인류를 위해 하 나님이 끌어안고자 하시는 고통의 무게가 어떤 것 일지를 가늠해 볼 수 있도록, 아브라함 안에서 역 할을 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신 것은 아브라함만 을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 을 통해 모든 민족을 축복하기 원하셨고, 그가 축 복의 통로가 되기를 바라셨습니다. 아브라함을 부르신 하나님의 목적은 선교에 있었다는 것입니 다. 그렇기 때문에 아브라함은 죄인들을 향한 하 나님의 고통과 선교에 대한 하나님의 열정을 이 해할 수 있어야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나 그가 여호 와 앞에 섰던 곳으로 가 보았습니다. 그는 소돔과 고모라와 그 들판의 온 땅을 내려다보았습니다. 그가 보니 그 땅의 연기가 화로에서 피어나는 연 기처럼 솟아오르고 있었습니다”(창 19:27~28) 창 19:27~28에서 아브라함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요? 왜 한 번 더 하나님께 구하지 못했 을까? 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을까요? 하나님이 6번이나 자기의 기도를 들으셨다면, 7,8,9번이라 도 듣지 않으셨을까 라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을 까요?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라는 말은 주님 자신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누구보다도 잘 아셨던 주님이 하신 말씀이니, 하 나님의 마음에는 용서의 한계가 없다는 것을 말 해줍니다. 아들까지도 아끼지 않고 내어주신 분이 우리에게 무엇을 더 주지 못하겠습니까? (롬 8:32) 소돔과 고모라 성의 문제로 고통스러워하시는 주님 앞에서, 인류의 구원을 위해 아들의 죽음까 지도 계획하고 계셨던 분의 마음을 아브라함이 좀 더 알았다면, 그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 몇 번 이고 더 구하는 일을 주저하지는 않았을 것입니 다. 그러나 그때 아브라함은 그런 하나님의 마음 을 보지 못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6번의 간구로, 50명의 의인에서 10명의 의인까지 구원의 조건 을 낮춘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어쩌면 모리아의 사건을 경험하고 나 서야 그는 자신의 간구가 충분하지 않았다는 것 을 깨닫지 않았을까 추측해봅니다. 당시에는 이 해하지 못했으나, 모리아산의 의미가 순종의 문 제를 넘어, 인간 이해 범주를 넘어 존재하는 하나 님의 고통을 좀 더 이해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 음을 깨닫고서는 말입니다. 모리아 사건에 대한 이제까지의 이야기들은 모두 추측에 근거한 것입니다.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내 날을 보리라고 기대하 며 기뻐하다가 마침내 보고 기뻐했다”(요 8:56) 타락한 인류를 위한 하나님의 고통을 이해하는 것, 그것은 하나님의 선지자로 부름을 받은 아브 라함에게 원하시는 것이었고, 이방의 빛으로 부 름을 받은 이스라엘에게 원하시는 것이었으며, 또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통해 이것을 우리에게 깨 달아 알게 해주셨습니다. 성령께서는 모든 것, 하 나님의 깊은 것들까지도 자세히 살피시는 분이십 니다”(고전 2:10) 예수 그리스도는 그 누구보다도 그런 “하나님의 깊은 것들”, 하나님의 마음을 아셨던 분으로 하나 님의 일을 위해 십자가를 기꺼이 지신분이십니다. 선교란 우리 지혜나 열정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선택이셨던 그리스도를 통해 드러난 하나님의 고통을 이해하고, 어떻게 든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의 고통에 동참하고 자 하는 것이 선교이고 진정한 선교의 동력이 아 닐까 싶습니다. *본문은 우리말성경을 사용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