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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강제 철거에 분노한 하대원 철거민들은 이튿날인 4월 20일 ‘하대원 철거 반대 대책위원회’ (위원장 홍상기)를 구성하고 성남시청 시장실을 점거하며 농성하였 다. 시위대는부상자 치료, 임시 기거용천막설치, 대책 없는강제 철거의 중단등 을 요구하였고, 부상자 치료와 전입 문제는 추후 협의하기로 하고 임시 기거용 천 막을받아자진해산하였다. @6 . 27 강제 철거와하대원철거반대 대책위원회의 수난 1988년 4월 19일의 철거 이후 하대원동 철거민들은 대책위원회를 중심으로 더욱 협력하여 서로 집을 고쳐주는 등 거의 모든 집들을 복구하였다. 이에 성남시에서는 6월 10일과 12일 300여 명을 동원하여 다시 한 번 강제 철거를 시도하였다. 그러나 대책위원회를 중심으로 60여 세대 80여 명의 주민들이 가구와 나뭇가지 등으로 방 어벽을쌓는등완징하게 저항하였고성남시청의 철거 시도는무위로돌아갔다. 그러나 1988년 6월 27일 성남시는 시청 직원과 전경, 백골단 등 1800여 명을 동원 하여 무허가 주택들이 밀집해 있는 하대원동 산12-1번지 일대를 포위하여 외부의 접근을차단한 뒤 소방차와 불도저 퉁 중장비를동원하여 또다시 강제 철거를 시도 하였다. 주민들은 가구 등을 쌓아 만든 방어벽에 불을 붙이고, 돌과 오물을 던지며 맞서대항하였다. 이날의 강제 진압과 철거 와중에 김덕순 할머니(“)가 머리를 다쳐 병원에 입원하 였으나 결국 8월 4일 숨졌다. 또한 오영자 · 박영숙 · 나끝수 · 박신정 · 서혜란 · 이 경희 · 이건영 · 최창호 등 주민 19명이 엉덩이뼈를 다치거나 팔이 부러지는 등 중 무허가집 6C여 채가철거되고 난뒤 낙담하는주민들의 모습 (1988. 6. 27) 철거묘뻐| 맞서 싸운 흔적이 적 나라한 오물 묻은 이승권의 옷 가지(1988. 6. 2끼 제1표정의사회를위한행동,민주효낸동 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