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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들의 철거 반대 시위’ 만을 포함시키고자 한다_1 물론 건물주들의 철거 반대 시위 역시 크게 보면 생존권 투쟁의 범주에 포함될 수도 있고, 생존권과 이권을 엄격하 게 구분하기도 어려운측면이 있어 제외하였다. 1) 하대원철거반대 (1) 무허가 주택의 난랍 1968∼1971년의 성남은 서울 철거민들의 집단 이주로 형성되어 1971년 광주대단 지 사건이라는 철거민들의 집단적 저항이 초래될 정도로 열악한 상황이었다. 1989 년 당시 성남시는 서울 면적의 1/4 규모인 172k머였으나, 전체 면적의 100/o에 인구 800/o가 모여 시는 기형적인 도시로 발전하였다. 주택 보급률은 48.5%로 전국 16대 도시 가운데에서도 최하위에 속하는 등 주택 문제가 심각해지자 주민들은 지구적 으로 주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근 야산에 무허가 집을 짓고, 시 당국은 철거하 고, 주민들은 또 짓는 악순환의 반복 을 도처에서 쉽게 볼 수 있었다. 하대원 지역도 그중하나였다. (2) 하대원 칠거 반대 시위의 경과 @] 4 . 19 철거와하대원 철거 반대 대책위원회 구성 하대원 1차 철거 반대 시위는 1985년 신광교회 주변의 무허가 지역에 대한 철거 가 시작되면서 전개되었다. 주민교회 이상락 등은 철거민의 생존권 투쟁을 지원하 였으나 1986년에 주민들이 인근으로 흩어지면서 마무리되었다. 하대원 2차철거반대 시위는현재의 영성중학교후문과 3번 국도의 야산사이에 있는하대원동산12-1번지 일대에 1차철거 반대 시위를벌였던 사람들이 하나둘 씩 모여들어 점차로 무허가 주택이 들어서자 시 당국이 1988년 1월부터 간헐적인 철거를 시도하면서 발발했다. 특히 1988년 4월 19일의 강제 철거로 인해 28가구의 무허가주택이 철거되었고, 나끝수와홍진숙등이 부상을 당하기도하였다. 1 당시의 시위 주체와 필지는각각을 하대원 철거 반대 투쟁’ , i분당세업자들의 철거 반대 투쟁’ , ‘은행동 세입자들의 철거 반대 투쟁’ 이라부른다. 96 제7권-민주주의-민주화운동과 시민사회 활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