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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5젤 대중 청당 건설과 사민사회로의 전이 1 . 지방자치제의 도입 1987년 12월 15일 대통령 직선제를 코앞에 두고 소위 북풍29이 불기 시작했다. 이 른바 김현희 사건, 혹은 영원한 미스터리로 남은 I어L기 폭파 사건이었다. 곧이어 대통령 직접 선거가 치러졌고, 1988년 2월 25일 노태우가 제13대 대통령으로 취임 했다, 반면 1988년 4 . 26 총선은 여소 야대與小 딴大로 끝났고, 그 결과 완벽한 지역 정당 네 개가 탄생했다. 5공 청산과 악법 개폐에 대한 요구가 이어졌지만 집권당인 민주정의당을 중심으로 3당 합당이 이루어지면서 216석의 거대 여당이 탄생하였 다. 이후 독주와 파행의 시간이 역시를 가로질렀다. 그리고 1991년 3월 26일 또 하 나의 역사 적인 선거가 치러졌 다. 비록 단체장선거가유보된 반쪽짜리였지만, 1949 년 제헌 헌법에서 위임한 「지방자치법」이 제정되었고, 1952년 처음으로 읍 · 변의 호 선거가 실시되어 지방 의회가 구성되었고, 1960년 4. 19혁명 후 전면 실시되었 다가 5. 16군사쿠데타로 지방 의회가 해산되고 특별조치법으로 「지방자치법」의 효력이 정지된 지 30여 년 만이었다. 1980년 제5공화국은 지방 자치를 실시하되 시 기는 법률로 한다면서 무기 연기했던 것을 1987년 헌법 개정 때 「지방 의회 구성에 관한 유예부칙 규정」을 삭제하였고, 1988년 「지방자치법」을 전면 개정하여 우여콕 절 끝에 1991년 지방 의회를 구성하기에 이른 것이다 1991년 지방 선거의 결괴는 ‘민주지유당(약칭, 민지당)의 압승과 운동 진영의 대혼 란’ 이란 한 문장으로 요약 가능하다. 그러나 이는 다 음과 같이 다시 말할 수 있다. ‘권력은알았고,거리의투사들은몰랐다’ 이미기지들사이에서는선거결과에대 한 충분히 근거 있는 이야기가 거의 확신으로 떠돌고 있었다. 이는 당시의 신문을 보면 알수 있으며, 선거 결과에 그대로나타났다. 지방 선거는 55.5%의 투표율(1988년 제13대 총선, 75.8%)을 보였다. 야당인 민자당의 29 여기에서의 북용은자연 기후로서의 바람이 아니라 ‘북한’ 과관련한 이념 문제가우리나라선거에 주는 영향을 일걷 는다 70 제7권-민주주의 민주회운통과시민시회 활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