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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지도 역량에 대한 과신도 문제라고 지적하면서 민중 항쟁을 승리한 이후에 혁 신 정당의 건설로 연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결 과 탄생한 단체가 1991년 12월 1 일 건설된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약 청, 전국연합 )이다. 정당 조직은 아니었지만 전국연합은 ‘민주자유당 심판과 민중의 정치세력화’ 를 전면에 내세운 통일 전선 조직이었다, 운동 진영의 분열이 본격화된 것은 1995년 6 . 27 지방 선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선거에서 민주당은 압승을 거두었고, 1987년 대선(단일화에 실패, 결국 정권을 노태우 후 보 에게 내주고 말았 다 는 비판)에 이어 1992년 대선에서도 김영삼 후보에게 패하면서 정계 은퇴를 선언했던 김대중은 선거 직후 정계 복귀를 선언한 다. 이른바 ‘비판 적 지지 파’ 가등장하면서 독자적 정치 세력화 를주장하는 세력과의 분열이 시작되었다. 김 대중의 첫걸음은 민주당을 쪼 개면서 출 범한 ‘새정치국민회의’ 였지만 1996년 4 · 11 총선에서 패배하였다. 김대중은 수평적 정권 교체라는 절대적 명분을 내세워 김영삼 정부에서 떨어져 나온 자민련의 김종필과손을잡는다 이것은격렬한논쟁을불러일으켰지만, 3당 합당 이후 절정에 이른 한국 정치의 몰이념적 난장판 을 되돌릴 수 있는 힘은 그 어 디에도 없었다. 새정치국민회의의 모태 였던 민주당은 그 해 11월 신한국당 이회창 의 손을 잡고한 나라당 을출범시킨다. 3) 국민승리21과 민주노동 당의 창당 이러한흐름속에서 1997년 8월 민주노총을중심으로국민승리21이 창당된다. 이 어 10월에는 지역 조직으로 성님국민승리21이 조직된다. 처음에는 1997년 대통령 선거를 위해 권영길 후보의 선거 조직으로 결성되었다가 정당의 형식을 갖추게 된 국민승리21은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약칭, 민 주노총) 권영길 대표 와 전국연합의 이 창복대표기-공동상임 의장을맡았다 국민승리21은 ‘지역 · 붕당 · 금권정치를 척 결하고땀 흘려 일히는사람들의 정치를 구현하기 위해 새로운정치 세력화에 앞 장 서겠다’ 는 목적을 내세웠다. 즉 ‘종이 정당(Paper l 〕a1까) ’ 은 선거 전략의 일환으로, 2000년 민주노동당 을목표로하고 있음을 내부적으 로 정리하였고그해 3월의 대의 원대회에서이를확인하고있다. 68 제7권 민주주의 민주화 운 동과시민사회환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