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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균 44건) 1980년의 봄과 비교해도 6배를 기록했다. 노동조합수와 조합 원수도 가파르게 증가했다. 1987년 6월 30일 기준으후 2449개의 단위 노동조합에 조합원 90만 6000여 명이었던 것이, 1987년 12월 말에는 3532개의 단위 노동조합에 조합원 117만 5000여 명으로, 1988년 6월에 는 5062개에 151만여 명으로 증가하였다 성남의 경우, 1987년 7월 7일 ‘성남지역해고지복직투쟁원회(약칭, 해복 투)’ 노동자들은 라이프제화의 강제 사표와 부서 이동을 폭로하여 회사 로 하여금 결국 철회시킨 것을 시작으로, 라이평l화 노동자들의 전면 파업(7. 쟁), 샤니식품 해고 노동자들의 출근 투쟁 과정에서 관리자들로 구성된 구사대의 폭력으로 웅급실에 실려 간 사건(8, 5) 등이 이어졌다. 또 이듬해인 1988년에는 노동자의 사망과 한강성심병원 영안실에서의 시선 탈취 사건(5. 2)이 일어났다. 성남 소재 고려피혁에 근무하던 노조위원장 최윤범이 민주노조설립을 요구하며 온몸에 시너를 붓고 시위를 하던 도중 관리자에 의해 불이 붙어 긴급히 병원으로 후송된 것이 4월 25일이었다. 바로 전날, 신구대학에서 141B 사업장 600여 명의 노 동자들。l ‘성남민주노동자협의회’ 결성식을잔치 분위기로 치룬지 하루 만의 일이 었다.18 영안실을포위하고 있던 전경, 백골단은 시경 제2부장의 지휘 하에 ‘뛰어’ 라는구호와 함 께 영안실로진입, 시신을지키고 있던농성자45명을무치별 구타, 전경 차에 개 끌듯 싣고 목동, 신월동 등지에 내던져버리고 이를 틈타 시신을 탈취하였다 . 시신 탈취 후 선산도 아 닌 충청도 음성군 대덕공원묘지에서 2일 오전 7시에 몇몇 가족과 회사측 30여 명이 참석 한가운데 장례를치렀다19 한편 고려피혁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설립한 것은 2월 26일이었으나 당시 노동 조합법상 필요한 >-J급 조직의 인준증을 화학연맹이 별다른 이유 없이 발급하지 않 음으로써 노동조합 결성은무산되었다. 18 r한겨레신문』 1988년 6월 1일 ‘성민노협은 안건사노조간부 해고 철회 투쟁, 월드아트 위장폐업 철회 투쟁, 합동전 자구속자석방투쟁, 옥산봉저l 구사대 반대 투쟁 둥을 연대하여 승리로 이끌었던 경험을발판으로하여 결성된 것이 다’ 19 r성남민주회운동시 편찬을 위힌 전문조λ씨업 최종보고서』, 2 뼈 ,40-43쪽 민주노조 설립을 요구하며 분 신한고려피혁 최윤범 열사 제1편-정의λ냥|를위한행동,민주회운동 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