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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신으로 항거한 김종태 열사 자호씹 제2젤 체5공화국 서•l의 민주화운동(1980∼198끼 1. 민주호뭔동의태동 1) 서울의봄과 5 . 18광주민주화운동 저15공화국은 ‘봄’ , 이른바 ‘서울의 봄’ 으로부터 시작되었다. 1979 년 10월 26일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박정희 대통령 피격 사건과 최규 하 과도 정부의 등장, 그리고 1980년 2월 29일 김대중을 비롯한 재야 인사 678명에 대한 사면 복권이 이루어지면서 였다. 그해 4월 14일 전 두환보안사령관이 중앙정보부장을 겸임한다는 발표에 신경 쓴사람 은 없었다.6 그러나 5월 15일 서울역에서 민주화의 군대는 회군을 결 정했고, 이틀 뒤 정권은 전격적으로 진군을 결정했다, 5월 17일 공수 부대는 전라남도 굉주로 ‘화려한 휴기J 를 떠나 자신의 국민에게 총 구를들이댔다. 그리고짧은봄은 지나가 버렸다. 전라남도 도청을 피로 물들인 5월 27일 새벽 광주 민주회운동이 비 극적 결말을맞고 얼마 뒤,6월 9일오후 5시 50분서울 신촌 이대 앞 네거리에 작은 불꽃이 피어올랐다. 1958년 부산에서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 태어나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하고 남의 집 고용살이로 떠돌던 소년 노동자, 배우겠다는 일념으로 들어간 성남 제일실업중학 최초의 검정고시 합격자였던 그는, 차마 저 혼 자 행복할 수는 없었다고 외쳤다. “내 작은 붐뚱이를 불 질러서 국민 몇 사람이라도 용기를 얻을 수 있게 된다면 저는 몸을 던지겠습니다. 내 작은 폼뚱이를 불 싸질러 광주시민, 학생들의 의로운 넋을 위로해 드리고 싶습니다,”7 그는 주민교회의 청년 회원 김종태였다. 광주 학살과 김종태의 죽음, 그것은 의로운 죽음이 용기와 양심 의표현이었던한시기를 알렸다. 6한홍구, r내한민국사』, 한겨레출판사, 2α%, 511-512쪽 7 성남6월항쟁20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 「김종대 열사의 유서」, r성남6월 항쟁 20년 기념 자료집J, 50 저17권 민주주의-민주화운동과시민사회 활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