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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그때를 회고하며 필자의 인터뷰에 응한 임승철 목사가 이런 말을 남겼다. “입 금하고나니까오원이 형이 이사람저사람한테 전화로술한잔하자했다는거야. 푼돈이 생기자술생각부터 났던거지.하,오원이 형 ------!” 권오원은 이해타산을 따질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와 얘기를 나누노라면 참으 로 진솔한 사람, 그러면서 헛헛한 가슴의 소유자라는 것을 누구든지 느낄 수 있었 다. 필시 될 듯 될 듯하다가 뒤로 후퇴하는 민주주의, 그 말썽꾸러기가 권오원의 속 을태웠으리라. 권오원의 빈소에 1980∼1990년대 성남지역 문화운동판 인력들이 다수모였다. 지 난날을 회고하면서 당시에 못했던 찰못의 인정’ 을 털어 놓기도 했다. 그런 가운데 객쩍은 얘기가 전순필의 귀에 들렸든지 여간해서는 언성을 높이지 않는 그가 삿대 질을하며 목소리를높였다. “너희들이 권오원을알아?오원이 형이 어떤사람인지 아냐고?’ 권오원이 어떤사람일까?지인들은권오원의 삶에서 바람의 이미지를떠올렸다. 바람개비 콘서트. 권오원을 기리는 바람개비 콘서트가 계속 이어지면서 젊은 세대 들이 참여하는 장이 됐으면 하고 바란다. 세월이 지나고 시대가 변하고 거기에 걸 맞는 새로운 변화의 바람이 지속적으로 불어 세대를 아우르는 발전된 문화운동으 로 거듭나기를 희망해본다. 제2편-공정사회를위한실천,시민사회활동 3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