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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권오원 추모 행사 ‘바람 개비콘서트 포스터 이다. 전도유망한 젊은이가 지역을 활동 무대로 할 생 각을아예품지않으니 권오원 추모 행사에 관한 것으로 성남시 문화운동 보고의매듭을짓겠다. 권오원은 1980년대 초 YMCA에서 동년배들과 어울 리면서 시국에 눈을 폈다. 그때의 벗들은교류를지속 했다. 친목회의 이름은 ‘모세모임’ 이다. 가수 생활은 앞에서 언급한 대로 1986년 노래마을 1집 앨범을 발 표하면서부터이다. 2007년 7월 6일 권오원은 유언 한마디 남기지 못하 고 세상을 떠났다. 권오원 본인을 비롯해 이무도 예상 하지 못했던 급사急死였다. 갑자기 쓰러져 중앙병원 응급실로 실려 갔는데, 소식을 접하고 병원으로 달려 간하동근이문상온필자에게 이런말을전했다. “의 사가동쁨도 넘기기 힘들다고하더라. 그렇게 속이 썩 어문드러진상태에서도-- 모세모임에서 이듬해 기일권오원을기리는행사를 열었다. 그리고 추모의 자리는 노래마을 옛 동료들과 솟대에서 힘을 보태 계속 이어졌다. 2011년에는 행사 이름도 정했다. 바람개비 콘 서트. 권오원이 기타를 메고 마지막으로섰던 무대는주민교회에서 열린 6월 항쟁 기념 식이었다. 고별 무대가 됐던 당일 행사에서 그가 통일을 기원하며 불렀던 노래는 「직녀에게」이다. 문병란의 시에 박문옥이 곡을 붙인 것을 백창우가 편곡하기도 했 던노래로권오원의 애초L곡이었다. 이별이너무길다. 슬픔이너무길다 선 채로기다리기엔세월이 너무길다. 가난했다. 그런 사정을 익히 알기에 행사를 주관한 임승철 목사가 출연료를 책정 했는데, 신용 불량으로 본인 통장은 거래가 중지돼 다른 사람 명의의 통장을 이용 332 제7권-민주주의-민주화운통과시민사회 활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