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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했다. 성남시의 예술 인력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시대의 과제에 나름대로 최선의 노력 을다했다. 경제적인 문제를 비롯하여 다들 형편이 열악했다. 그러나그들은 지역 에서 독자적인 판을 꾸리려고 열정을 아낌없이 쏟았다 수도권에서 서울과 인천을 제외하면콘텐츠가풍성하기로는 성남이 단연 앞섰다. ‘1980∼1990년대 문화운동은 다름 아닌 예술운동이었다. 이에 동의히는가? 리는 문자메시지를보냈더니돌죄와이동석이 이런답변을보내왔다. ‘예술보다는정치 적 선전에 더 치중하지 않았나 1 두사람은 필자가 질문한 의도를 다르게 해석했던 것이 분명했다. 하여 내용적인 것이 아니고분야를 얘기했던 것이라는문자를다시 보내자두사람도동조를표했다. 예술적 완성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을 전제로 한 예술운동이었다. 자체에 모 순적 속성을 지니고 있었다. 단체마다 운동에의 헌신성과 예술적 표현 능력을 두고 내부의 골이 깊어졌다. 그리고그것은 예술적 완성도를높이려는집념이 강한 인물 들로하여금 일선을 떠나도록하는요인으로작용했다. 옛 동료들마저 의견이 엇갈린다. 누구는 “운동은 영원히 지속되어야한다”라고 말하고또 누구는 “시대가부여한소명을다했다”고 말한다. 먹고사는문제에 등 떠 밀려 일선을 떠나야 했던 필자는 이렇게 생각한다. ‘그것은 각자 알아서 판단할 문 제’라고 3. 변호}를 바라며 현재 활동하고 있는 단체로는 도움소와 맥이 닿아 있는 솟대가 유일하다시피 한 실정이다. 필자는 이것이 못내, 아니 크게 아쉽다. 풍물 이외 분야에서는 세대를 이 어줄 기반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단체가 대안인 것은 아니다. 시대는 확실히 변했다. 운동권이라해서 재야 에 머물고 비주류, 아웃사이더로 취급받던 풍토는 지난 시대의 일이다. 운동적 성 향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도 본인이 실력을 갖추고 있고 대중의 지지를 받는다면 공 중파 방송에서도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세상이다. 그런데 젊은 세대로 문화 관련 분야에 꿈을 품은 이들은 다들 중앙 매체만 쳐다보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걱정 제2펀-공정사회를위한실천,시민사회 활통 3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