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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가심각했다. 학생 출신이면서 저항 문화 진영에 속했던 중요 활동가들은 운동판을 떠나는 선 택을 하는 비율이 높았다 판을 떠나는 활동가들이 단체 내에서 차지히는 비중이 크변 클수록 후유증이 컸다. 그중에서도 ‘돈’ 문제는, 우울한 얘기지만 어쩔 수 없 는현실이었다. 선의로 시작한 일이었다. 모을 때는 액수가 많든 적든 그저 고마운 일이다. 그러 나선의가공동체 전체의 것이 아닌 것이 됐을 때 대개의 경우돈문제가심각한사 안으로 부상됐다. 한데 운동권은 돈 처리에 가장 취익f 한(” 집단이었다. 돈의 흐름 자체가 수사 대상이 되기 십상이었던 탓에 목돈을 끌어들인 경우에는 서류 처리도 하지않았다. 사무실 보증금이든 행사에 소요될 경비든 돈을 모으자는 말을 제일 먼저 꺼냈던 것은 당연히 중요 활동가였다. 활동가 개인이 차지히는 비중이 낮으면 돈 얘기는 꺼내지도못했다. 그것이 문제였다. 세월이 흐르는가운데 다 써 버린 돈, 거기에 입 증할 자료도 부실한데, 지난날 돈을 모으자고 했던 사람이 과연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승 }는가? 저항 문화가 대안 문화로 바뀌는 시기에 저항 문화 진영 내부에서는 동지들끼리 얼굴을 붉히는 잡음이 흘러나왔다. 그것이 대안 문화 진영에서 보내는 러브콜에 화 답조차 하지 않은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필자 의 경우하동근에게 이런투의 냉소적인반웅을보이기도했다. “성남이 싫은사람 한테 성남문화라니요?’ 2. 시대적 요구와 예술성 높은 수준의 민주주의를 실현한 것은 아니지만, 1990년대 말에 이르러서 두 가지 는분명히 이뤘다. 첫째,선거에서 부정행위가자행될 여지를크게 줄였다. 둘째,표 현의 자유가보장되는폭이 훨씬 넓어졌다. 이 두과제를 이루지 못하고다음세대에 대한민국사회를넘겨줄수는 없는 일이 었다. 또한 예술가들 스스로 그것은 굴레였다. 독재 정권이 요식적인 선거로 권력 을 지속하면서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면 예술가 들은 숨조차 쉬기 힘들 것이기에 그 330 제7권-민주주의 민주화운동과시민사회 활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