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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웰 까치의 통일아리랑포스터 .닝‘j 、.!-- 불이 나지 않았으면 나도 작업실을 뒤졌을 텐데 -- 김기설, 불이 얼마나뜨거운지 그때 혹독히 경험했 을터이건만‘ 서울에서 가두시위가 벌어질 때는 경찰에 붙잡혀 전경 버스에 실리면 싸움은 끝이었다 그러나 성남은 그렇지 않았다. 전경 버스 안에서도 격투를 벌여, 이 쪽수가 많았을 때는 경찰을 밀쳐내고 우르르 빠져 나 오기도했다. 김성만이 운영하던 술집 다영글’ 에서 필자는 이런 일을 겪었다. 밤 10시쯤이었다. 그 시각이면 손님들이 거나하게 취했을 무렵인데 누군가 후다닥 뛰어 들어 오더니, “구사대가소예산업 노동조합을치러 들어갔 다「라고 소리치는 것이었다. 그러자 곧바로 술집은 텅 비었다. 필자를포함해 전원이 노조를구하겠다고 공단으로 달려간 것이었다. 김성만은 황당했으리라. 그런데 조금 있다가 그도 소예산업 정문 앞에 나타 났 고, 이어서 ‘도움소’ 회원들도나타났다. 회사 관계자가 아닌 사람이 쟁의에 관여하기 위해 정문을 넘어 들어가면 제3 자 개입 금지 위반으로 고소당하는 예가 많았다. 그날 소 예산업에서는 정문을 사이에 두고 노동조합원들과 지원 나온 사람들이 마주 앉았 고, 즉흥 문화 공연이 벌어졌다. 소예 노조로부터 기타를 넘겨받아 김성만이 노래 를, 역시 소예 노조의 악기로 도웅소 식구들이 풍물을 두드렸 다. 구사대는 쇠파이프 등으로 무장했지만 막상강제 해산하지는못하였다. 즉흥성의 기반은 웅집력이었다. 일단 상황이 벌어지면 똘똘 뭉치는 것이다. 지금 의 광역시나 도청 소재지 정도 가 아니면 집회에서 문화 공연을 한다는 것은 엄두를 내지 못했으나성남은달랐 다. 인구 40만 명 정도였던 시기에도두 시간 정도꽉 채 울 프로그램을 자체적으로 준비했다. 도움소의 연례행사 ‘백중제’ , 성남노련 문화 부와지역문화 패가 협력했던 ‘일하는사람들의 가요제’ , 청년단체에서 주도했던 ‘까치의 통일아리랑’ 등은 정기화되어 차분히 준비할 수 있었지만 특정한 이슈를 두고 벌이는 가두집회는 며칠 전에 결정나 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럼에도 성남문화 320 제7 권 -민주주의-민주회운 동과 시민사회 활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