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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마을’ 의 좌장 격이었던 백지논은 판화 달력의 선두 주자였다. 풍생고퉁학 교 미술반 수업이 .:::17} 받은 미술 수업의 전부였는데 민들레를 소재로 한 그림에 서 독보적인 영역을 구축하였으며,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민중 화가로 해외에서 작 품이 전시되기도 했다. 성남시 집회에 걸개그림이 쓰였다면 그건 모두 백지논의 손 을 거친 것이었다 백지논과 권영환이 공동 작업을 벌여 서울 인사동에서 전시회를 개최했는데 반응이 좋았다. 그런데 백지논은 화가로서 치명적인 상처를 입기도 했 다. 작업실 겸 주거지로 썼던 곳이 화재로 전소되어 그때까지의 삶의 흔적을 고스 란히잃은것이다.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약칭, 전민련) 사회부장 김기설이 행사에 쓸 걸개그림을 구하 러 백지논의 작업실을 찾았다. 김기설도 성남에서 노동운동을 시작해 백지논을 알 고 있었다. 1991년 1월 몹시 추웠던 날에 백지논이 일이 있어 작업실을 김기설에게 맡기고 외출했다. 그런데 꾸벅꾸벅 졸던 김기설이 난로를 엎어뜨려 화재가 났다. 화 가의 작업실인지라 인화물질 투성이었고 김기설은 겨우 폼만 빠져 나왔다. 한편 그 해 5월 김기설은 서강대학교 본관 옥장에서 폼에 시너를 뿌리고 분신자살 했고 강 기훈유서 대필사건으로 이어졌다. 당시 성남지역 운동단체에서는김기설의 필적 을찾으려고시무실을샅샅이뒤졌는데,백지논이다음과 같은말을했다. 성남민주노조협의회 걸개그림 제2 편 공정사회를위한실천,시민사회 활동 3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