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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1젤문화운동과환검 1. 문호}운동개념 및 대상 여기에서 얘기하는 문회운동은 예술운동에 국한된다. 대저 문화라는 것은 폭이 너무도 넓다. 문화를 접미사로붙여 통하지 않을 것이 없을 정도다. 뒷골목 문화, 교 통 문화, 정치 문화 등 그러면서도 운동권에서는 문회운동이라는 말을 자연스럽게 시용했다. 문회판, 문화패라는 말도 널리 쓰였다. 1991년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이 발족될 때 성남에도 지부가 결성되었다. 약 칭 성남연합이다. 그때 성남지역문화운동단체연합회( 약칭,성문연) 도구성되었다. 성 문연 가맹단체는 노래마을, 그림마을, 풍물패 도움소, 풍물과 연극을 아울렀던 노 동자문화마당, 노동자문학회 퉁이었다. 성문연에 포함될 단위로 의상디자이너나 요리사 단체 동은 고려하지 않았으나 무용 · 사진 , 영화 관련 단체들의 활동이 많 지 않았음은 아쉬운 점으로 남는다. 이는 성남뿐만이 아니라 전국적으로 비슷했다. 운동권에서 문화운동이라 이르는 것은 예술의 범주를 뛰어넘지 못하였으나 그 당 시 시대를대변했음은부인할수없는사실이다. 개인의 활동도 살피겠지만 주된 문화운동 대상은 단체 활동이다. 전국적 지명도 를 지닌 작가 · 가수 · 배우라고 하더라도 단지 주소지만 성남이라면, 그의 활동이 지역 내부 문화 역량으로 얘기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다소 복잡하다. 문화운동 의 경우에도복잡한것은마찬가지다. 이에 여기에서는단체든개인이든지역운동 권과 결합했는지 여부를 중시할 것이다. 성남에 사는 아무개가중앙차원의 민주화 운동에는 열심이었는데, 지역의 일에는 무심했다면 고려 대상에서 부득이 제외하 였다. 1960년대 중반에 이르도록성남지역 일원은한적한농촌이었다. 읍단위 행정 구 역도 없었다. 세촌면, 중부면, 돌마면, 낙생변 동은 면 단위 행정 구역이었다. 마을 단위로문화 행사는 열렸겠지만문화운동이라 일컬을수준이 아니었다. 1960년대 후반에 서울시 철거민들이 광주대단지로 대거 유입되면서 도시화가 급 격히 추진되었다. 성남시가 광주군에서 분리 독립해야 할 정도로 속도가 빨랐다. 제2면-공정사회를위한실천,시민사회 활통 3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