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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외면적인측면에서 투쟁의 격렬성과강인함이 반드시 운동의 견고함이나 지속 기능성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성남 지역 대부분의 산업과 공장, 기업 이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고 영세한 상태에서 저임금과 열악한 작업 조건으로 고통 받은 만큼이나 투쟁은 치열한 %댐을 보였지만 그것이 언제나 바람직한 양상만을 띤 것은 아니었다. 1988년 4월 고려피혁 노조위원장 최윤범의 분신이나 1989년 4월 덕진양행 노조위원장 김윤기 분신 사망에 이어 성남 지역에서 노동운동을 하다가 전민련 사회부장으로 활동하던 김기설은 1991년 5월의 이른바 ‘분신 정국’ 을 상징 하는 인물이 되었다 노중기는 노동자 대투쟁을 주도하고 전국 최초로 한국노총 지 역협의회와 조직 통합을 이룰 정도로 강력했던 이 시기의 성남 노동운동은 1990년 대 중반에 이르면 급속히 약화되는 모습을 보인다고 지적한다‘ 이는 전국 수준의 노동운동이 1998년 이후 약화되는 것과는크게 다른 양상을 보인다는 것이다.영 이러한점에서 1987년 6월의 민주화운동에서 성남지역투쟁의 격렬함과강인성 은 그것이 노동자와 도시 빈민, 그리고 하층 자영업이라는 사회 범주와 계급들이 운동을 주도했다는 사실에서 찾아야 한다. 서울에서의 6월 항쟁 전개는 교육받은 중간 계층으로서의 화이트칼라와사무직, 전문직 종사자가 대거 합류하였지만, 성 남의 경우에는 노동자와 도시 빈민, 그리고 하층 자영업과 같은 도시 하층민이 운 동의 주력군을 이루었다.34 이 점에서 비록 일정한 한계는 있었다 하더라도 성남 지 역의 항쟁은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 지역에 비해 오히려 민중항쟁에 가뺀 것이었 다고 할 수 있다. 택시 노동자투쟁씨987년 7∼9월 노동자 대투쟁을촉발핸 계기 가 되었디는 역사적 사실에서 택시와 버스 노동자들의 참여에 의해 촉발된 1980년 광주민중항쟁의기시감앉視感을느끼는것은이러한맥락에서이다 1987년하반기의 노동자대투쟁 이후다른지역에서와비슷하게 성남지역의 노 33본 책 r성남시쇄(2014) 제7권 1편 6장 「민주화 물결의 핵’, 노동운통」 참조 나。}가서 1쨌년에 한국노동조합총연 맹성남시협의회와성남지역민주노동조합협의회가 ‘지역문제의지주적 결정’을표벙히띤서 중앙조직과는별개로 지역 독자의 노동자단체를결성하고자한시도도 이와관련하여 주목된다 지역 자체의 독자성과지율성에 대한주 장이라는 점에서 일정한 의의를갖는다하더라도 민주화와계급 해방을 위한거대 서사의 주류적 흐름에서 이는 이 례적인 것으로 받。F들여졌다 본 책 제7권 1편 3 장 %월 민주화운동과 성남 」에서 보듯이 김락중은 “이 사건은 비록 며칠 만에 원상회복되고말았지만성남지역의 운동성에 광주대단지사건이 어떻게 영향올 미치고 있는지를상정적 유로보여주고 있다”고평하고 있다 34 당시의 자료는 1‘서울에서처럼 넥타이 화이트칼라가 주력이 되지 않고, 다방레지에서 식당주인에 이르기까지의 계 급범주로서의쁘띠부르주아도시 비공식부문종λ}자들”이 이 지역 6월항쟁의주력이 되었다고언급하면서, ‘항쟁 의 이슈에 대하여 잘모르더라도우리 지역의 젊은이를두들겨 패는 백골단만은도저히 용서할수없었던술집 이중 마들의 용감한 저헝들이 이해되는 이유n라고 지적한다(성남6휠항쟁20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 『성남 6월 항쟁 20년 기념 자료집」, 2007, 34쪽) 30 제7권-민주주의 민주화운동과 시민사회 환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