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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과 대치중인 광주대단지 주 민들(1971) 진보적 지식인들과종교단체에서 도시 빈민문제에 관심을가지고지역 주민을조 직화히는 현장 활동에 적극 나서게 되었다. 1972년 5월에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KNCC)의 수도권 도시선교위원회는 성남 지역에 주민교회를 설립하였으며, 7년 후 인 1978년 8월에는 가톨릭 노동 사목 활동의 일환으로 노동자와 도시 빈민 지원을 위한 만남의집과 메리놀공동처1C1981. 10) 퉁이 문을 열고 활동을 시작하였다. 광주대단지 사건 이후 성남 지역에 조성된 세 개의 공단에 서울시 성동구 성수동 의 공장과 기업들이 대거 이전 입주하면서 산업 노동자층과 아울러 공단 비깥의 영세 수공업 업체들에서 비공식 노동자층이 점차 형성되어 갔다 일하는 지역과 지 위의 차이가 있었다 하더라도 이들은 열악한 노동 환경에서 일해야 한다는 점에서 비슷한 조건에 놓여 있었으며, 점차 노동운동의 싹이 자라나기 시작하였다. 영세한 공장 규모와 열악한 노동 환경, 만성적 저임금, 잦은 산업 재해와 실업의 위협이라 는상황은노동자들의 생활상태를도시 빈민과사실상구분하기 어려운존재 조건 을조성하였다. 24 제7권-민주주의 민주화운동과시민시회 활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