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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성남 민주화운동의 뿌리 1970년 이전 시기에 이르기까지 한국 사회의 민주회운동에서 노동자 기층 민중 의 역할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미미하였다. 민주 회운동은 학생과 지식인, 그리 고사회운동가들에 의해 충원되어 온 이른바 재야등이었으며, 이들의 대부분은 어 느 정도는 교육받은 중간 계급 출신이 주류률 이루었다. 민주회운동권에서 기층 노 동자의 실태와 노동운동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을 제공한 결정적 계기는 1970년 11 월 청계피복 노동자 전태일의 분신 자샅이었다. 이 사건은 민주화운동을 주도했던 학생과지식인,종교인 등에게 ‘민주수호’ 의 진정한본령은 ‘민권수호’ 에있디는 점을 명확하게 일깨워 주었으며, 1970년대 민주화운동은 민중운동에 대한 관심과 유대를 발전시켜 나가기 시작하였다. 1971년 8월 광주대단지 사건은 이러한 연대를 더욱 결정적인것으로하였다. 1970년대 초반 자연발생적이고 분산적 양상을 띠었던 노동운동은 학생운동 및 재야 사회 운동권과 연대하면서, 이 시기 후반에 들어오+ 조직적 성격을 띤 이른바 민주노조운동으로 발전하였다. 민주화운동에 대한 개선교와가톨릭의 적극 적 참여 19와아울러 학생들과진보적 지식인들은노동문제의 조사 연구와노동자교육, 노 동 야학의 개설 운영, 팽플릿이나 신문의 발행, 노동운동의 지원을 위한 대중 집회 개최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 시기 노동운동은 종교 단체틀에 의한 ‘인권’ 과학 생들에 의한 ‘민권’ 이리는 차원에서의 노동운동에 대한 연대와 지원이 주류를 형 성하였다. 성남 지역에서 민주화운동의 기원은 1971년 8월의 광주대단지 사건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사건은 전국의 차원에서 도시 빈민 문제를 쟁점화하는 계기가 되었으 며, 지역 차원에서 보더라도 도시 빈곤층의 적극적인 생존권 투쟁의 영향을 받은 18 이조사는지역주민들사이의자발적단합활통에제한된것으혹지역정치에의 제도적참여및조직적인지역사회 운동은 배제되어 있다 경험적으로구시가지에서는 저소득충대상의 사회복지운동을 비롯한다앙한 시민운동단체 의 활동이 활발한 양상을보여 왔다 이에 따라구시가지에서 지역 공통체 활동은 비교적 조직화된 권익 옹호및 사 회복지운동과 보수적 지역 공동체 활동의 대럽이 전통적인 젠더 관계와교차되어 나타나고 있는 반면, 신시가지에 서는자발적인자조활동을중심으로보다평동화된젠더 관계가반영되고있는것묘로추측된다(이선미,「지역공동 체와젠더 차이」, r시민들의 사회참여와시민공통체』, 백산서당,2007, 135∼136쪽). 19 1950년대 후반부터 노동문제에 관심을가지고활동해 오던 도시산업선교회나가톨릭노동청년회0α)와 더불어 가 롤릭농민회, 기독교교회협의회(NCC), 크리스잔 아카데미 풍의 종교 단체들은 1974년의 이른바 민청학련 시건을 계 기로특히 사회 참여활동을강화하였다 재판정의사회를위한행동,민주화운통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