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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1' I 치 ‘ - j.「 니를!? 광주대단지 때 조성된 20 평 주 택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 는중원귀1971) ‘꿇 따-­ - -- 썩 ” r ι-- 끼 ”써 … 써 만 명이 거주하고 있었다. 사건 이후 광주대단 지 사업은 서울시에서 경기도로 이관 되었고 1973년 성남시로 승격될 당시 행정 구역은 지금의 수정구, 중원구, 분당구 까지 포함 하게 되었다. 승격 당시 성남시는 광주 대단지 사업 지역과 인근 모란 단 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농촌 지역이었으며 이러한 상황은 1990년대 분당 신도시, 2000년 판교 신도시가 건설되기 전까지 크게 변하지 않았 다. 분당과판교신도 시 건설 이전까지의 성남시는도시 지역과농촌지역이 명확히 구분되었다. 광주대단 지를중심으로하여 발전한도시 지역은수십 년동안저소득 층에 한정된전입 · 전출이 이어지면서 도시 전체가빈민 지역,우범 지역으로낙인 찍혔다. 성남시가 도시 빈민 지역의 대명사가 된 까닭은 성남시의 출발이라 할 수 있는굉주대단지 개발시기 일괄적으로구획된 20평의 분양지에 기인한다. 당시 원주민 대 이주민 비율이 4% 대 96%이었는데, 전체 가옥수가 2만 3988 동이 었으니 이 중 4ν0 를 제외한 2만 3028동 중 은행동 관사 등 일부를 제외하고는 모두 194 지 17권 민주주의-띤주 회운 동과 시민사회 휠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