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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성남시의 도시 형성 과정과운동역량의 축적 1987년 민주화를 기점으로 한 민중운동에서 시민사회운동으로의 전환은 성남시 의 경우 서울 중심의 중앙 사회운동괴는 다소 다른 모습으로 나타났다 성남시는 중앙과 같이 민중운동에서 시민사회운동으로 급전환하기보다는 민중운동적 성격 이 유지된 속에 시민사회운동으로전환하는모습을보여 왔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 은 성남시의 구시가지를 기반으로 하는 사회운동의 특성이라 할 수 있으며 신시가 지를 중심으로 하는 시민사회운동의 경우 계급성과 정치성이 배제된 속에 제도화 를 지협 1 능 형태로 나타났다. 민중운동과 시민사회운동이 중첩되어 나 타났으며, 신 · 구시기-지 운동이 별도의 지향성을 갖는다는 특성 외에 구시가지를 기반으로 하여 수십 년간 축적되어 온 민족 · 민주 · 민중 운동 역량이 1990년대 이후의 시민 사회운동의 형성 및 성장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는 것도 또 하나의 특성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이러한 특성들은 성남시의 도시 형성 과정 및 도시 구성과 밀접한 관 련 속에 형성되어 온 것이기 때문에 지역 시민사회운동의 구체적 내용을 살피기 전 에 성남시의 지역적 특성과 그 속에 진행되어 온 민주화 이전 단계의 운동을 살펴 보는 것이 더욱 필요하다. 1) 세 번의 신도시 건설과 지 역적 단절 성남시는 1960년대 말 한국 최초의 위성도시 건설이라 할 수 있는 광주대단지 건 설을 시작으로 하여, 분당 신도시 건설, 판교 신도시 건설 등 모두 세 번에 걸친 신 도시 건설 과정을 거쳐 지금에 이르렀 다. 그리고 각각의 과정이 앞서 형성된 시가 지와는 단절적이고 급격한 모습으혹 진행되면서 도시 전체가 해당 건설 사업별로 삼분되는 결과가 빚어졌다. 즉 광주대단지 사업에 기반을 두고 형성된 성남시 구시 가지와 분당구의 신시가지, 그리고 2000년대 들어 건설된 판교 신시가지가 지리적 으로 삼분되었을 뿐만 이-니라 인구 구성과 역사적 측면에서도 별다른 연관성 없이 독자적으로 건설되고 발전되어 온 것이다 성남시의 첫 번째 신도시 건설에 해당하는 광주대단지 사업은 1960년대 말 수정 구와 중원구에 걸친 11.SOk미(358만평)에 서울의 청계천변 철거민을 포함해 35만 명을 이주시킨다는 계획으로 시작되었다. 1971년 광주대단지 사건이 발생했을 때 약 14 제2펀-공정사회를위한실천,시민사회 활동 1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