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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젤 도사 빈민운동 개관 1. 효댁의 빈민운동 약사 1) 도시 빈민의 발생과 관심 집단의 등장 1960년대 이후 국가 주도의 근대화는 수출 주도의 산업화와 급격한 도시화로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이 과정에서 대규모 농촌 인구의 도시 유입은 산업 노동 인력의 공급 과잉으로 인한 실업과 빈콘 그리고 주거 문제 등 다OJ:한 도시 문 제를 야기했으며, 이러한 문제들이 중층적으로 공간화되어 나타난 것이 도시 빈민 지역이었다. 도시 빈민 지역에서 가난한 이들에 대한 관심을 처음으로 가진 집단은 개신교와 천주교 등의 종교계였다. ‘기독교가 민중의 종교로 거듭나야 한다’ 는 해방 신학의 영향을 받은 여러 목회자들이 현실 참여를 요구하면서 기독교를 민중 신학으로 발 전시키고자 하였다. 이들의 활동이 가시화된 것은 1969년 9월 한국의 진보적 종교 인들이 종파의 차이를 넘어서 연합하여 만든 ‘도시문제연구소’ 였다. 1971년 9월 도시문제연구소 도시선교위원회에서 활동 하던 빈민 지역 활동가들 을중심으로 빈민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을 위한강력한기구의 설립을목적으로수 도권 도시선교위원회가 결성되었다. 그 이후에 도시 빈민 지역 중심의 활동을 전개 한다는 의미에서 1973년 1월에 수도권 특수지역 선교위원회로 개칭하였으며, 다시 1976년 5월에 한국 특수지역 선교위원회로 개칭하고 그 활동을 이어갔다. 하지만 유신 체제의 끊임없는 탄압, 도심 판자촌의 철거와 재개발로 인해서 빈민 지역 활 동가들의 활동이 크게 위축되었고, 1979년 2월에 이들의 활동은 마감되었다. 이들의 활동은 도시 빈민에 대한 진보 세력의 관심을 촉발시킨 최초의 목적의식 적인 운동이었으며, 1980년대 빈민운동을 대중적으로 확산시키는 중요한 토대가 되었다 특히빈민지역에완전히투신하여 ‘빈민들과 더불어 함께살기’라는전략 은 1970년대 탄압의 시기에 선택된 차선이었지만 주민들과의 일상적인 공동생활 속에서 만들어 나가는 신뢰 관계는 이후 빈민운동의 원동력이 되었다. ‘빈민들과 재1편-정의사회를위한행동, 민주화운동 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