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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었다. 이러한주민들의 시위에 성남의 24개 시민사회단체가 연대한것은지역사 회에큰반뽑불러일으켰다 당초 402세대 규모의 아파트 건설 계획을 359세대 규모로축소시켰고, 인근에 주 차장 · 소공원 · 놀이터 · 도로 등을 확충하도록 하는 성과를 이끌어내는 등 이후 은 행2동의 주거 환경 개선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2. 일터를 빼앗긴 상인들의 저항 1) 성남노점상연합회의 결성과 생존을 위한 시위 (1) 결성 배경 성남시는 철거민들의 집단 이주를 시작으로 형성된 도시이기에 실업자와 일용 노동자의 비중이 타 도시보다 높으며, 노점상 역시 타 도시보다 많다. 1984년 성남 YMCA7} 노점상 밀집 지역인 상대원 · 성호 · 중앙 · 제일 · 국제 · 종합 · 모란 · 은 행 시장 동을 조사한 자료에 의하면, 성남 지역의 노점상은 640여 개소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시청 앞과 단대통, 그리고 조사에서 제외된 노점상 밀집 지역을 포함 하면 성남노점상연합회(약칭 ‘성노련’ )가 주장하는 2000여 개소가 티-당한 것으로 추 정할 수 있다. 이 당시 노점상의 환한 불빛이 가로등보다 밝았으며 종합시장의 포 장u}차는 성남의 명물 중의 하나였다. 성남YMCA가 1984년 58명의 노점상을 무작위 표본 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생계 유지를 위해서 노점상을 한다’ 고 대답한 비율이 68.7%, 수입은 월 10만 원 이하가 12.9%, 10∼20만 원이 59.2%.로 대부분이 월수입 20만 원 이하의 열악한 상황에 처해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노점상들이 가장 힘들어 한 것으로는 물건을 통째로차에 실어 가거나 발로 걷어차고반말하는동 시청 공무원들의 단속을 꼽았다. 이처럼 힘든 여건에서 노점 단속은 일상적으로 벌어졌고, %아시안게임’ 과 ‘88 서울올림픽’ 을 앞두고 도시 미관 정비라는 명목으로 단속이 더욱 강화되자 노점상 들은 조직화하기 시작하였다 1986년 5월부터는 주민교회 이상락 주도로 노점상들 을 위한 치과와 한방 진료 활동이 전개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활동에 힘입어 성남 의 노점상들은 1990년 8월 26일 회장 임용재와 서 영석 등이 중심이 되어 ‘시청앞지 제1표정의사회를위한행동,민주호댄동 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