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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운동 단체도 적극 나섰다. 6월 22일에 성남YMCA, 성남광주지역 기독교교회 협의회가중심이 되어 분당신도시 건설에 대한 공청회를 개최하였다. 분당신도시 건설은 재벌에게 특혜를 주며 강남의 주거난 완화가 아닌 성남의 열악한 주거 문제 해결의 입장에서 접근해야 하며, 신 · 구시가지의 격차 심화와 구시가지의 슬럼화 등에 대한 우려를제기하였다. 분당 신도시 반대 시위 초창기에는 주로 가옥주들 중심으로 전개되었으나, 후반 기에는 세입자들을 중심으로 분당 세입자 대책위원회가 구성되어 진행되었다. 대 책위원회는 성남시장과 면담 등을 요구하였으며, 시청 앞에서 철거 반대 집회 등을 여는등철거반대시위를벌였다 1990년과 1991년 사이에 철거가 강행되어 집들이 철거되자 세입자 대책위원회도 급속히 약화되었다 30여 가구만이 남아 가건물을 짓고 집단 이주한 채 대토 불하 등을 요구하며 철거 반대 시위를 계속하였다. 그러나 그나마도 세입자 대책위원회 간부들이 구속되고 1992년 9월 시범 단지에 주민들의 입주가 시작되면서 분당 세입 자들의 철거 반대 시위는막을내리게 되었다. (3) 분당 신도시 건설 반대 시위의 성과와 한계 분당 신도시 건설 계획은강남의 주택 수요 충족과급등하는주택 가격 하락을 위 한노태우정부의 주택 200만호건설 계획의 일환이었다.그러나이러한계획의 수 립과집행 과정에 주민들의 의견은무시되었고, 이러한 일방적인신도시 건설은주 민들의 거센 저항을초래하였다. 분당신도시 건설 반대 시위의 대표적인 성과는정부의 중대형 아파트위주의 건 설 계획을 서민용 아파트 10만호 건설로 변경시켰다는 점과 세입자들에 대한 임대 아파트 입주권 부여가 제도화되는 전기를 마련한 점을 들 수 있다 성남YMCA와 성 남광주지역기독교교회협의회등이공청회를개최한것은나름대로의미가있었지 만 이를 확산시키고 지역 사회의 광범위한 참여를 이끌어내는 데에 미흡했던 것은 아쉬운부분이다 분당신도시 건설은오늘의 성남을 있게 한중요한계기임에는분명하다.하지만 본래목적이 서울강남지역 거주중산층들의 주거난완화를위한것이었기 때문에 구시가지인 수정 · 중원 지역과의 격차 심화, 열악한도시 환경과주거난온존등의 과제를 남겼으며, 주민의 참여와 성남시의 개발 주권이 배제된 중앙 위주의 일방적 100 제7권-민주주의 민주화운동과시민사회활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