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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금부 터. 의금부는 조선시대 왕명을 받들어 죄인을 추국하는 일을 맡아보던 관청이었으며, 금부, 금오, 왕부라 부르기도 하였다. 박해시기 천주교 신자들은 서울의 좌.우포도청과 지방의 각 진영및 군.현에서 문초를 받았다. 그들 가운데 중죄인 즉, 주교와 신부, 평신도 지도자들은 국왕의 특별한 명렬에 의해 의금부로 압송되어 국문을 받았다. 1791년 신해박해때 이승훈 베드로가 의금부에서 국문을 받고, 1801년의 신유박해 때 권철신 암브로시오가 순교한 이래 많은 천주교 선교사와 지도층 신자들이 이곳에서 신앙을 지켰다. 1801년 주문모 야고보와 최창현 요한 회장도 포도청과 의금부에서 문초를 당했고, 앵베르(범) 라우렌시오 주교, 모방(나)베드로 신부, 샤스탕(정) 야고보 신부, 정하상 바오로 성인등 주교나 신부를 비롯한 교회 지도자들은 포도청과 의금부에서 혹독한 국문과 문초를 겪었다. 1866년 병인박해 때에도 베르뇌(장) 시메온 주교, 브르트니에르(백) 유스토 신부, 도리(김) 베드로 신부, 볼리외(서) 루도비코 신부들과 전장운 요한, 최형 베드로, 정의배 마르코 성인도 문초를 당하며 마지막까지 신앙을 지켰던 곳이 포도청과 의금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