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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집터는 본래 중종때 순화공주의 궁터라 불행하게도 을사 경술 두 조약때 매국대신들의 모의처로 사용되더니 삼일독립운동 때에는 그 조약을 무효화 시킨다는 뜻으로 여기에서 독립선언식이 거행되었다. 즉 기미년 삼월일일 정오 탑골공원에서 터진 민족의 절규와 함께 민족대표 일동의 여기 명월관 지점 태화관에서 대한독립을 알리는 식을 거행하는 동시에 미리 서명해 두었던 선언서를 요로에 발표하고 급히 달려온 일경들 앞에서 대한독립만세를 제창하고 일제히 사로잡혔다. 그뒤 남감리교회는 이 터를 매수하여 태화기독교 사회관 건물을 지었으며 일제 말기에는 침략의 도구로 징발 되었으나 팔일오해방과 더불어 이를 되찾이 사업을 계속했다. 그러나 도시재개발계획에 따라 건물이 헐리게 되매 새집을 짓고 여기에 그 사연을 줄잡아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