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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고장 군산의 3.1 운동사 병자수호조약(1876년)으로부터 23년 후, 1899년 5월 1일 군산이 개항되었다. 11년 후 한일합방(1910년)이 되었고, 그 여세로 인해 군산은 일본인 득세의 독점도시가 되고 말았다. 쌀 수출의 수송 증가로 1914년 군산은 전국 제1의 수출항이 되어 비극적인 일제의 쌀 착취장소로 변해 버렸다. 1919년에는 한국인보다 일본인이 228명이나 더 살고 있는 일본인 도시화가 되었고, 1920년에는 일제 식민정책의 식량 및 원료 생산지로 평야지대를 끼고 있는 군산이 그 중심지가 되었다. 이러한 일제의 천시와 수모의 핍박 속에서 1892년 11월 3일 한국에 입국한 美남장로교 7인의 선교사들 중 전킨(William McCleery Junkin/한국명 : 전위렴) 선교사 부부와 의료선교사 드 루(Dr. A.Damer Drew/한국명 : 유대모) 선교사 부부의 군산 선교스테이션이 충청도와 호남지역의 선교지 교두보로 궁멀(현 구암동)의 구암동산에 형성되어, 그 규모나 조직면에서 외세에 대한 조직적 저항을 할 수 있는 여건들이 만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