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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치옥(金致玉) 열사 1919년 4월 4일 솜리만세운동은 김치옥 열사가 설계하였다. 남전교회의 중심 집사인 김치옥 열사는 박성열 집사로부터 독립선언서를 받아 함께 만세를 부르기로 작정하고 문용기 열사를 찾아가 구국의 길을 함께 걷기로 맹약하엿다. 남전교회 교인들을 3지대로 나누고 제1지대는 최원봉 집사(목사)가, 제2지대는 박영문 열사가, 제3지대는 문용기 열사가 인솔하여 솜리로 진출하였다. 약속된 시간 12시 30분, 박성엽의 사회로 단상에 오른 김치옥 열사가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이어서 문용기 열사가 단 위에 올라 대한독립의 당위성을 흐르는 강물처럼 도도하게 설파하였다. 익산 4.4만세운동의 주동자 김치옥은 일본 헌병에 체포되어 말할 수 없는 고문을 당하고 고난의 옥살이를 한 끝에 남전교회로 돌아왓다. 그러나 김치옥 열사는 심한 고문의 후유증으로 일생을 정신이 혼미한 상태에서 일제의 감시망을 피해 이리저리 이사하다가 북한 땅에서 소천하였다. 1990년 정부는 그에게 애족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