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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해농민봉기(己亥農民蜂起) 기해농민봉기는 음력 1899년 4월 18일(양력 5월 27일) 벌왜벌양(伐倭伐洋), 보국안민(輔國安民)을 기치로 이곳 왕심마을에서 일어난 농민봉기이다. 영학당(英學黨) 사건이라고도 알려진 이 봉기에는 전라도 17개 군,현(郡,縣)에서 천여 명의 농민이 참여하였다. 봉기한 농민들은 흥덕, 무장, 고창을 점령한 후 영암 농민항쟁 세력과 합세하여 광주와 목포, 전주를 점령하고 서울로 진격할 계획을 가지고 의거(義擧)하였으나 고창 전투에서 관군에게 패하여 안타깝게도 그 뜻을 이루지 못하게 된다. 이 봉기를 주도한 최영두, 최익서, 홍계관, 홍낙관, 김문행, 김낙철, 정일서, 송대화 등은 전봉준, 손화중, 김개남 장군과 함께 1894년 동학농민혁명에 참여한 분들이다. 그 기치왁 ㅖ획, 지도자들의 행적을 통하여 기해농민봉기는 동학농민혁명을 계승한 반외세, 반봉건 민족항쟁이엇음을 알 수 있다. 기해농민봉기는 비록 실패하였지만 참여자들의 뜨거운 민족애와 희생정신은 면면히 이어져 항일의병운동, 3.1운동으로 계승되었다. 이에 선열들의 정신을 기리고 이어가겠다는 다짐으로 기해농민봉기 유족들과 왕심마을 주민들 그리고 뜻있는 정읍시민들이 마음을 모으고 정읍시의 지원을 받아 이 기념조형물을 건립한다. 2020년 5월 27일 (사)동학농민혁명계승사업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