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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을 마치셨다. 연희전문의 농구부 창설멤버로 선수 생활을 하셨고 일제 통치하에서는 지사 정신으로 운동에 정진하여 1936년에는 전일본 농구종합선수권 제패에 일조하고 비록 일본 대표지만 한국인 최초로 백림올림픽에 참가하셧고 현역은퇴 후에는 신기술 개발 장려와 교양과 인격을 갖춘 선수와 경기지도자의 육성에 중점을 두어 88세의 고령임에도 농구교본인 "위너 바스켓"이라는 전술서를 저술하셨고 지도자, 육성부문에서는 코치아카데미초대원장, 한국농구코치협회장 등을 역임하셨다. 1945년 해방 후 대한체육회 재건, 대한농구협회재건을 주도하는 등 체육행정가로 활약하며 대한올림픽위원회, 한국대학체육연맹을 창설하고 중요역직을 역임하셨다. 당시 제정한 대한체육회정관, 전국체육대회헌장은 지금까지 전해내려오고 있다. 체육외교의 일선활약도 지대하여 1950년 대한올림픽위원회의 IOC가입, 아시아경기연맹 가입의 중추적 역할을 시작으로 아시아 농구선수권대회창설, 아시아여자농구연맹 창설에 직접 참여하여 초대부회장을 맡아 각 국간의 교환경기 및 각종 국제대회 유치 등으로 한국 스포츠의 위상과 농구 수준을 한 단계 높이는 등 스포츠 외교에 큰 공헌을 하셨다. 이상과 같은 공로로 1962년 문화포장, 1971년 국민훈장 목련장을 수상하셨고 1982년에는 체육인 최고의 영예인